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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교통사고를 계기로 마음의 상처와 대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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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로야
다이앤 리 지음/나무옆의자·1만3000원

작가 이름도 책 제목도 이국적이지만, 엄연히 한국 작가가 한국어로 쓴 소설이다. 제1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다이앤 리(사진·본명 이봉주)의 <로야> 얘기다.

‘로야’는 페르시아말로 꿈 또는 이상을 뜻한다. 소설 화자인, 캐나다 밴쿠버에 사는 한국 여성이 페르시아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설은 화자 겸 주인공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으면서 해묵은 마음의 상처와 대면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회복과 치유의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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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니 낳고 아빠 공장 식구들 밥 다 해 먹이느라 조리도 못했다. 아니, 니야말로 엄마 걱정이 안 되더나? 전화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혼자 있는 엄마 궁금하지도 않더나? 혼자 있는 엄마 불쌍하지도 않나! 맏이는 하늘이 준 자린데 닌 도대체 뭐꼬!!”

딸을 낳고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데 여섯 식구 밥을 해 먹이느라 허기와 피로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새삼 엄마가 그리워진다. “엄마가 된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엄마였다.” 출산 뒤 한 달이 되도록 전화 한 통 없는 한국의 엄마에게 딸이 먼저 전화를 걸어 서운함을 표하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위와 같은 대꾸를 퍼붓는다. 이런 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이 <로야>의 갈등의 핵심을 이룬다.

“니는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인지 아나!!”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엄마는 의례적인 인사나 군더더기 말이 없이 대뜸 쏘아붙이듯 따지고 든다. 엄마의 음력 생일에 맞추어, 시차를 계산해서 가장 적절한 때라고 생각되는 시각에 한 전화였음에도. 소설 속 또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니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나?!! (…) 내일 아빠 기일 아이가! 니는 정신이 있나 없나!!” 외국 남자와 결혼해 캐나다에서 사는 딸이 음력을 챙기기란 말처럼 쉬운 노릇이 아닐 텐데, 한국의 엄마는 그런 사정쯤 아랑곳없다는 투다.

“소설은 99퍼센트 제 얘기를 사실대로 쓴 거예요. 실제로 제가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을 앓으면서 마음 속 상처를 다시 만나게 됐고, 그걸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낫지 않을 것 같아서 생전 처음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드러내도 아프고 숨겨도 아픈 게 가족인 것 같아요.”

시상식에 맞추어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작가는 16일 낮 기자간담회를 열고 “<로야>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로야>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미 쓰고 있는 차기작에서는 남편과 부모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라며 “그렇지만 특정 종교와 문화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보편성을 지니도록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대 독문과와 서울대 독문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교와 서울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에서 독문학 박사과정을 공부했으며 2001년부터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한국어로 된 문학책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고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소설은 모국어인 한국어로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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