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6일 저녁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97차 촛불대행진 ‘똑똑히 보아라! 분노한 탄핵 민심을’이 열려 참가자들이 ‘오~필승! 코리아!’를 ‘윤~석열! 탄핵해!’로 바꿔 부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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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국가재구조화연구센터장
현실은 탄핵 이후를 걱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3년도 되지 않았는데, 민주화 이후 수십년간 한국 사회가 어렵게 쌓아가고 있었던 암묵적 규범들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국민이 단 하루도 인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더 답답한 것은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 뉴스나 신문도 보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고가의 물건을 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은 어떤가?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인사들이 연이어 고위직에 임명되어 국정에 참여하고 있다. 노동부 장관엔 가장 반노동적이라고 비판받는 인사를 임명하고, 독립기념관장엔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의혹을 받는 인사를 임명하는 식이다. 국가인권위원장에 반인권적이라고 의심되는 인사가 임명된 것은 화룡점정이었다. 더 해괴한 일은 대통령의 배우자가 국회의원 공천과 정부 고위직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은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할 야당과 비판적인 시민사회를 반국가세력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민생? 말할 것도 없다. 수출 증가로 함박웃음을 짓는 대기업 집단과 달리 내수에 기반하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앵무새처럼 긴축, 긴축을 반복하고 있다. 총선 전에 열심히 민생투어를 했던 윤 대통령이 맞나 싶다. ‘민생’을 ‘선거운동’의 동의어쯤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면, 탄핵은 자연스러운 경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탄핵을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저된다. 탄핵의 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할 사유는 차고 넘칠 것 같다. 그런데도 탄핵을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저된다. 물론 한국 민주주의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보수 정부의 대통령을 연이어 탄핵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민주주의에 좋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뭐냐고? 해 봤잖아.”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던 2016~2017년 촛불시민항쟁의 결과가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의한 정권을 끌어내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탄핵으로 불의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사라졌다. 하지만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세상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자 새로운 정권이 촛불이 탄생시킨 정권의 무능과 불공정을 질타하며 더 큰 불의를 안고 돌아왔다.
탄핵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다음은? 물론 거론되는 여야 대권 주자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 하지만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순 없다. 우리 스스로에게 묻자. 윤 대통령을 몰아내고,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냐고. 우리가 가난한 나라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고,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룬 이후, 우리는 우리가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하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좌표를 상실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각자도생뿐이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남이 어떻게 되든, 나와 내 자녀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급기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까지 이어지는 세습자본주의가 공고해지고 있다. 그러자 나와 내 가족만 잘살게 해준다면, 대통령은 누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좌표를 잃은 우리 사회의 극단적 결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탄핵되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부정하겠지만,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는 법률적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이미 탄핵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탄핵이 아니라 우리에겐 탄핵 이후 우리가 만들어 갈 나라의 좌표가 없다는 것이다. 탄핵이 또 다른 무능하고 불의한 정권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우리가 꿈꿀 새로운 나라의 좌표를 만들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리는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공정한 과세와 일용직 노동자의 자녀와 의사의 자녀가 동등한 출발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꿈꾸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 우리가 만들어 갈 나라의 새로운 좌표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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