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 미술관
◇지하철→미술관
지하철이 바뀌고 있다. 지난달 인천문화재단이 추진한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는 일상적 공간 지하철을 현대미술의 장으로 바꿔보자는 취지. 기획을 맡은 이탈 예술감독은 "예술 작품의 경계 없는 출구로서 새로운 공공 향유의 가능성을 실험코자 한다"고 했다. 설치 작가 육근병, 쿠바 출신 미국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등 29인의 한국·미국·프랑스 미술가가 힘을 보탰다. 에스컬레이터 앞 천장에서 흔들대는 거대 샹들리에 '소비 생태계'(이병찬), 층계참에 올라앉은 양복 차림 유인원들(설총식)이 주는 파격과 재치가 공간의 삭막함을 상쇄한다. 인천시청역에 이어 조만간 인천지하철 1호선 한 역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지하철×미술관
실제 미술관과 협력을 통해, 그저 미술 작품 한두 점을 지하철 대합실에 진열하는 방식에서 탈피한다. 지난해 우이·신설역에 생긴 이른바 '우이신설 미술관'은 효과적 작품 구현을 위해 공모에서 선정된 서울 시내 미술관(큐레이터)과 작가가 협력해 설치한 작품을 선보인다. 현재 신설동역 환승 통로에는 토탈미술관과 사진가 노세환(41)씨의 '멜트다운' 시리즈 등이 걸려 있다. 과일을 페인트통에 담갔다 건져낸 뒤 촬영한 일련의 녹아내리는 듯한 사진 속 사과·바나나·오렌지의 형광이 역사(驛舍) 곳곳에 다채로운 색감을 불어넣는다.
인천시청역 대합실 에스컬레이터 앞 플라스틱 조형물 ‘소비생태계’가 모터로 움직이고 있다. 필름·비닐·광섬유·미러볼을 통해 도시 생태계를 돌연변이처럼 시각화했다. 작은 사진은 김원근의 조각 ‘청혼가’, 최은동의 조각 ‘아톰’, 노세환의 사진 ‘멜트다운’시리즈, 설총식의 조각 ‘자리 만들기’(위부터). /인천문화재단·정상혁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성신여대입구역은 4호선 환승 에스컬레이터 벽면을 코리아나미술관과 강은혜(37) 작가의 '커넥션'으로 꾸몄다. 코리아나미술관 측은 "양 측면은 각 호선을 상징하는 초록·파랑의 시트지, 전면은 승객을 비추는 거울로 장식해 '미술적 연결'의 의미를 넣었다"고 했다. 다음 달 전시를 재개하는 3호선 경복궁역에는 '서울메트로 미술관'이 있다. 1관(180평)·2관(120평)의 하루 대관료가 20만원대라 젊은 작가 등이 큰 부담 없이 전시하기 좋다.
◇개당 8000만원↑… 관리·감독 허점
서울 지하철 1~9호선에 설치된 미술품은 270여 점. 최근 서울시가 오중석 서울시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비용 산정이 어려운 1~4호선을 제외하고도 5~9호선 72역별(지난달 개통 9호선 8역 제외) 미술품 설치비만 1억750만~1억1200만원으로 총 8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개성 없는 공공 미술이 많다 보니 미술적 향취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9호선 올림픽공원역에 찾아가 최근 역내에 설치된 철제 조형 작품에 대해 묻자 역무원은 "그게 미술품이었냐"고 되물었다. 지하철 미술품 선정 심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장준석 한국미술비평연구소장은 "너무 형식적이어서 미술 작품 역할을 못하고 인테리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정 작가의 작품 편중도 거론된다. 9호선은 미술품 총 38점 중 7점이 김모 작가 작품이다. 유명 작가가 아닌데도 작품 가격이 점당 8200만~1억1200만원이다. 의원실 측은 작품 선정의 투명성 문제, 대여가 아닌 단순 구입에 따른 재정 낭비를 지적했다. 미술품 관리 전담 인원도 없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역별 미술품 정보를 담은 지하철 문화예술 작품집을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다음 달 '미술품 관리 지침' 작성을 마칠 계획"이라고 했다.
[정상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