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함께 <나비가 된 소녀들>을 읽어 나갈수록 학생들은 몰입하기 시작했다. 수업 전 “그거 있잖아요. 위… 위안…”하며 장난치던 아이들도, 그 의미에 대해 알아갈수록 보다 진지해졌다.
책읽기를 마친 뒤 위안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3학년 아이들에게 ‘성노예, 강간’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본군을 위해 여자들을 데려가 일을 시키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고문하고 성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전달한 뒤 피해자들의 상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사인 내가 개입할 시점이 왔다. “지금은 할머니지만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는 여러분보다 2~3살 많은 언니, 누나였습니다. 이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무엇을 얻고 잃게 됐을까요? 가족을 잃고, 성폭력 피해를 당했습니다. 인권을 침해받았고, 자유를 잃었습니다.” 생존자 할머니들께서 고생한 이야기를 듣자, 아이들은 왜 그렇게 당해야 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질문시간을 주었는데 한 친구가 물었다. “선생님! 진짜 일본이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있나요? 수요 집회도 아직까지 하고 있나요?” 내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아이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이어 마음을 전하는 글쓰기 활동을 시작했다. 주제는 두 가지였다. 일본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과 위안부 할머니들께 전하는 위로와 응원이었다. 단숨에 편지지를 채운 뒤, 서로의 편지를 돌려 읽었다. 아이들은 서로 잘 썼다며 칭찬하고 “(일본은) 사과해! 사과해!”라고 외치며 전쟁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위해 우리가 나서자는 마음을 모았다.
실제 일제 강점기 때 남녀노소 구분할 것 없이 군수공장과 광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했다. 그 가운데 이번 수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부분은 ‘여성 인권 측면에서 바라본 위안부’였다. 전쟁 중 강간, 여성의 자유의지 묵살, 동등한 인간인 여성을 단순히 성적 쾌락을 위해 ‘이용’한 점, 이 사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무시 등 모든 내용을 다 깊이 있게 다루기엔 한계가 있지만 3학년 아이들도 위안부에 대한 올바른 기억과 이해, 명예, 인권회복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수업 다음 날, 우리 반 사물함 위에는 위안부 소녀상이 올려져 있었다. 한 학생이 휴지와 봉투로 감아 집에서부터 조심스레 가져온 것이었다. 그만큼 아이들 마음속에는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이다.
어제 읽었던 책을 샀다는 학생, 부모님에게 얘기했더니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같이 볼 예정이라는 아이 등 관심과 마음 모두 뜨거웠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속 시민 30명이 할머니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여성 인권을 말하며 일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나비효과처럼 ‘작은 열 살들’의 움직임이 큰 움직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정윤식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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