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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면접 땐 결혼 여부 묻고, 입사하면 ‘얼평’에 승진 배제… 직장여성 겪는 ‘젠더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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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젠더갑질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에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젠더갑질 실태조사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면접 때 받은 질문이) ‘남자친구 있으시냐’ ‘동거를 하느냐’ ‘결혼 계획이 있느냐’에요. 면접 자리잖아요. 그러니까 나의 임금은 얼마고, 내 근무 환경이 어떤지 그런 게 중요한 자린데요. 이런 호구조사를 당하고 있는 거에요. (면접 보는 사람은) 거의 뭐 항상 남성이었죠.”(SK브로드밴드 자회사 직원 ㄱ씨)

“경조사가 있으면 떡 돌리잖아요. 같은 층에 있는 분들에게는 제가 가져다 드리곤 했거든요. 떡 돌리려고 가지고 내려오는데 저와 친분이 없는 남자 주무관님이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계신 거에요. 떡 누구 때문에 돌리는 건지 알려드리면서 드시라고 했는데 갑자기 본인 바지 주머니를 들이미시는 거에요. 떡 넣으라고. 너무 기분나빠서 말도 섞고 싶지 않았어요.”(교육공무직 ㄴ씨)

“모뎀 회수 업무를 하고 오면 남직원들은 샤워장에서 씻어요. 여자들에겐 목욕탕 가라고 쿠폰을 줬어요. 업무 끝나고 갈 수가 있나요? 남자들은 6시 전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는데, 여자들은 끝나고 6시 넘어서 가라고 하면 누가 가겠어요.”(KT에서 기술직 근무경험이 있는 ㄷ씨)

누구나 직장에서 ‘갑질’을 경험하지만 어떤 종류의 갑질은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것들이다. 여성들은 면접 때 직무능력과 무관한 결혼·출산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남성 위주로 짜여진 업무 환경에서 불편을 겪어야만 한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강서양천민중의집 사람과 공간·한국비정규노동센터·한국여성노동자회 등 4개 단체는 일터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갑질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조사팀은 입사·임금·승진·업무 수행 등 전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성 차별과 성적 괴롭힘을 ‘젠더 갑질’이라고 이름붙였다.

조사대상은 KT본사, SK브로드밴드, 딜라이브,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수도권 교육공무직 총 282명이었다. 조사팀은 올해 9월 15일부터 한 달 동안 온·오프라인 설문조사와 대면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젠더갑질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구직 시 겪는 어려움을 묻는 말엔 ‘나이 많은 여성을 채용하는 회사가 없다’라는 대답이 29.1%(82명)로 가장 많았다. ‘여성을 적게 뽑거나 안 뽑는다’(24.1%·68명)라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질문에는 197명(69.9%)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197명을 대상으로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물었더니(복수응답 가능) ‘성적 모욕감을 유발하는 말을 들었다’는 응답이 34.0%로 가장 많이 나왔다. 불필요한 사생활에 관한 질문(25.9%), 회식 때 상사 등의 옆에 앉게 하는 행위(21.6%)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음란물을 보여주거나(15.2%) 원치 않는 사적 연락이나 만남을 요구하는 경우(9.6%)도 있었고 심지어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들 중 75.9%인 149명은 성희롱·성폭력 경험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알려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57명·38.3%), ‘불이익이 있을까 봐’(28명·18.8%) 등을 많이 꼽았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는 “여성들이 반말, 외모지적을 당하고 중요 정보에서 배제되는 것은 실제 일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더갑질’이다”라며 “여성이 직접 경험한 차별,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가시화할 때 차별이 구체적으로 포착되고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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