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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제 자식은 외고, 남의 자식은 혁신학교냐” 헬리오시티 학부모들 '촛불' 계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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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헬리오시티 ‘혁신학교 논란’
"일반학교 가게 해달라" 학부모 교육청 앞 무기한 농성

"제 자녀는 외고 졸업시켜놓고, 왜 우리더러 혁신학교 강요하냐."
한 학부모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왔다. 지난 17일 오후 7시 서울시교육청 앞.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학부모 50여명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두꺼운 점퍼를 껴입은 엄마들, 옆구리에 서류가방을 끼고 퇴근길에 곧장 왔다는 아빠들이었다.

이들은 일방적인 서울시교육청의 혁신학교 지정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12일 주민 간담회에서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일부 학부모에 ‘등짝’을 맞기도 했다.

논란이 격해지자 시교육청은 헬리오시티 내 3곳 학교(가락초·해누리초·해누리중)의 혁신학교 지정을 1년 유예하겠다고 밝혔지만, 학부모들은 한 겨울밤에도 교육청 앞에 모여 촛불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시교육청이 1년간 시간을 끈 뒤, 반대여론이 잦아들면 다시 혁신학교 지정을 강행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혁신학교에 긍정적인 교사들을 가락초·해누리초·해누리중에 집중적으로 발령 낸 뒤, 이들의 동의를 발판 삼아 혁신학교로 완전 전환하려는 꼼수입니다. 혁신학교 지정 철회 전까지는 아무리 추워도 촛불집회는 계속하겠습니다." 헬리오시티 학부모회 교육분과장 이모(44)씨 얘기다.

조선일보

17일 오후 7시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송파구 가락동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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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학력…기초학력 미달자 속출
헬리오시티 입주민들이 단지 내 학교의 혁신학교 지정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올해 초다. 본격적인 집회는 지난달 30일 서울교육청 앞에서 처음 열렸다. 당시 경찰 추산 300여명의 학부모가 모였다. 이날은 퇴근길 ‘아빠부대’도 등장했다. 정장차림의 아버지들은 "일반학교 가고 싶다" "조희연 교육독재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교육청 앞 촛불집회에 연일 참여하고 있는 학부모 이모(39)씨는 "조희연 교육감 두 아들이 졸업한 외고에 보내달라는 게 아니라, 제 자녀를 그저 일반학교만이라도 보내게 해달라는 것"이라면서 "이런 당연한 요구를 이 추운 날 나와서 계속하는데도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학부모 김모(42)씨도 "1만 세대 대단지를 상대로 혁신학교 실험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제 자식은 특목고 보내고, 남의 자식은 실험 쥐로 써먹느냐"라고 말했다.

2009년 도입된 혁신학교는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고, 토론·체험위주 수업을 강조한다. 혁신학교 확대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월 조선일보가 '혁신학교 학업 성취 수준'을 분석한 결과, 2016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혁신학교 고교생의 기초 학력 미달률은 11.9%로, 전국 평균인 4.5%의 세 배에 가깝다. 혁신학교 중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5%로 전국 평균(3.6%)보다 높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성적에 따라 '보통 학력'(100점 만점에 50점 이상 수준) '기초 학력'(20~50점) '기초 학력 미달'(20점 미만)로 구분한다. 기초 학력 미달자는 수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현직 교사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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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송파구에서 열린 헬리오시티 내 혁신학교 관련 주민 간담회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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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다던 혁신학교, 정작 교육고위직 자녀들은 안 갔다
"혁신학교에 정작 교육고위직 공무원 자녀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는 것도 학부모 반발의 요소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곽상도 의원(자유한국당)이 서울과 경기·인천 교육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혁신학교 시행 이후 교육청별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32명 가운데 자녀를 혁신학교에 보낸 사람은 단 1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의 3%에 불과한 수치다.

서울·경기교육청 고위직 중에서는 자녀를 혁신학교에 보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교육청은 교육감 공약으로 2011년 3월부터 혁신학교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서울시교육청 고위공무원 자녀 14명은 모두 일반고에 재학하거나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특목고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본인의 두 자녀는 외고에 진학한 이유에 대해 "용기가 없어 내 아들들은 주류로 키웠다"면서도 "(그러나)이제는 지식탐구의 방법론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었다.

혁신학교의 ‘발원지’인 경기교육청 교육고위직도 마찬가지다. 혁신학교에 자녀를 보낸 고위직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고위직의 경우, 자녀가 졸업한 일반고가 이후에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의 자녀도 외고에 진학했다가 자퇴했다. 이 교육감 자녀는 이후 캐나다·영국 등지에서 유학한 뒤 미국에서 취업했다.

헬리오시티 학부모 문모(43)씨는 "높으신 분들은 그 좋다는 혁신학교에 어째서 자녀들은 보내지 않고, 우리처럼 힘없는 학부모들에게 강요하느냐"면서 "교육 고위직이 자기네 자식들은 과학고·외국어고 졸업시키고, 남의 자식들을 혁신학교에 밀어 넣으려는 의도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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