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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저걸 왜 봐야하나" 민원 빗발쳐도…‘김정은 환영' 현수막 못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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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에 ‘김정은 위원장님 환영’ 현수막
주민들 "떼어달라" ‘분노민원’ 폭발하지만
구청들 "합법" "누가 달았는지 몰라"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래요? 광화문 한복판에 ‘김정은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붙었는데…얼른 떼어 주세요."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청에 민원인이 찾아왔다.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 앞에 붙은 ‘김정은 위원장님! 서울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화가 나서 그 길로 구청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저 꼴 보기 싫은 현수막, 당장 철거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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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 사옥 앞에 김정은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KT가 김정은 환영 현수막을 걸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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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김정은 환영 현수막, 철거할 수 없다
종로구청 담당자는 "난처하다"고 했다. KT사옥 앞에 걸린 ‘김정은 환영’ 현수막은 구청이 철거할 수 있는 불법 현수막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은 ‘집회 관련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허가 없이도 설치일로부터 30일간 내걸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광화문에 걸린 김정은 환영 현수막은 지난 2일 ‘미군 철수 촉구’ 집회 당시 설치된 것이어서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집회를 신고하고 설치한 현수막이라 철거할 수 없다"면서 "현수막을 떼어 달라는 항의가 많이 들어오지만 우리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옥 앞에 ‘김정은 환영’ 현수막이 걸린 KT도 당황한 기색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KT가 김정은의 서울 방문을 대놓고 환영한다"는 루머가 퍼진 것. KT 관계자는 "KT 광화문지사(支社)는 미국대사관 바로 옆이라 집회가 자주 열리는 장소"라면서 "내용이 어떻건, 회사 쪽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애들 볼까 무섭다" 민원 폭주하지만...
관련 단체가 늘어나면서, 김정은 환영 현수막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지난달에만 모두 7개의 ‘김정은 환영단체’가 출범했다. 나흘마다 하나꼴로 결성된 셈이다. 이들은 도심 한복판, 대학가, 번화가에 경쟁적으로 김정은 환영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다. 덩달아 서울시 다산콜센터, 구청 민원실에 "이런 현수막이 걸려도 되느냐" "당장 찬양·고무 현수막을 철거하라" "애들 보여주기 무섭다"는 민원도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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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청이 17일 오전 수거한 불법 현수막. 김정은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섞여 있다./ 종로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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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신고’ 없이 걸어 놓은 현수막은 불법이다. 당연히 이런 현수막들은 철거대상이다.
종북성향 ‘김정은 환영단체’들은 불법 현수막을 걸 때 나름의 ‘묘수’를 쓴다. 단속 사각 시각인 금요일 심야에 몰래 설치하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청 관계자는 "현수막 철거가 평일 업무시간에 이뤄진다는 점을 알고, 주말 내내 김정은 환영 현수막을 노출할 수 있게끔 금요일 밤에 내 건다"면서 "주말에 ‘김정은 찬양·환영 현수막을 내려 달라’는 민원이 쌓여서, 월요일 아침부터 철거반원이 바쁘다"고 말했다.

현행법(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불법 현수막을 게시할 경우,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구청은 현수막 하나에 보통 20만~3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김정은 환영 현수막은 과태료 부과조차 난망하다. 서울 성북구청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 광고의 경우, 현수막에 적힌 연락처로 설치자를 특정할 수 있지만 김정은 환영 현수막은 설치자를 파악할 수 없어 현실적으로 과태료 부과가 어렵다"고 했다.

"현수막을 내건 사람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해달라"고 요구하는 시민들도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화가 난 시민이 찾아와 ‘간첩도 이렇게 대놓고 김정은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경찰은 도대체 뭐하냐’고 따졌다"면서도 "대통령이 ‘모든 국민이 쌍수로 (김정은을) 환영해 줄 것이라고 말한 마당에 경찰이 김정은 환영 현수막을 적극적으로 수사하기도 그렇다"고 말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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