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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사투리, TV 중심에…서울말이 다당가, 사투리면 어떻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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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유백이’ ‘땐뽀걸즈’부터

제주어 사용한 ‘어멍의 바당’ 등

등장인물 90% 이상이 사투리 써

드라마 감초역할 넘어 ‘주연’ 꿰차

‘응답하라’ 시리즈 인기 기폭제

‘촌스럽다’ 편견 깨고 친근함 더해

“사투리도 하나의 문화 콘텐츠”

뮤지컬·예능 등 전반으로 확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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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따, 안 뒤져불고 잘 살아왔네요잉.”

“확 뽀사버릴라니까… 기달려라잉.”

옴마~ 이 오져부는 사투리는 뭐당가. 뭐긴 뭐당가 티브이 드라마 <톱스타 유백이>(티브이엔 금) 속 여자 주인공 ‘깡순’(전소민)이 대사제. 요즘 깡순의 사투리가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당게. 옴마 기가 막히당게~.

그렇다. 요즘 깡순의 전라도 사투리가 인기다. 깡순은 <톱스타 유백이>에서 섬마을 여즉도에 사는 오강순이다. 뜻하지 않게 이곳에 유배된 톱스타 유백(김지석)과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사투리는 깡순만 쓰는 게 아니다. 유백과 소속사 관계자 몇명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쓴다.

이처럼 사투리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 드라마는 또 있다. 월화 미니시리즈 <땐뽀걸즈>(한국방송2)는 경상도 사투리가 주를 이룬다. 구조조정이 한창인 쇠락하는 조선업 도시 거제를 배경으로, 댄스스포츠를 추는 고등학생들 이야기다. 지난 15일 종영한 4부작 드라마 <어멍의 바당>도 등장인물 90% 이상이 제주어를 사용해, 알아듣기 힘든 시청자들을 위해 표준어 자막을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한국방송> 제주방송총국이 제작해 전국에 전파를 탔다.

<명랑소녀 성공기>(2002년), <위풍당당 그녀>(2003년), <신의 선물―14일>(2014년) 등 주인공 중 한명이 사투리를 사용한 드라마는 간간이 있었지만, 모든 등장인물이 사투리를 구사한 경우는 드물다. 드라마에서 변방의 언어였던 사투리가 주요 언어로 자리잡은 것이다. 방송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사투리를 사용한 2012년, 2013년 방영작 ‘응답하라’ 시리즈가 성공하면서 시청자들이 사투리를 친숙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2004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규정을 바꾸며 사투리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고, 2014년 표준어만 가능하던 티브이 광고에서도 사투리를 허용하는 등 규제 완화도 한몫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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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드라마에서 사투리는 특정한 캐릭터, 특히 촌스럽거나 가난하거나 나이가 많고 고집스러운 인물에게만 허용된 말이었다. 운전기사나 가정부, 조폭 등 주인공 주변인물들이 사용하며 극에 재미를 불어넣는 정도의 기능을 했다. 주인공이 사투리를 사용한 드라마에서도 시골에서 올라와 세상 물정 모르는 걸 보여주기 위해 쓰이곤 했다. 1990년대 방영한 드라마 <당추동 사람들>에서는 “~재미있구만유” “내가 니들 친구여” 등 사투리를 과하게 사용했다며 방심위 심의위원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특히나 전라도 사투리는 주로 조폭 등 악역에 배치되면서 ‘전라도 사투리=부정적 인물’ 고정관념을 만들었다. 1970~80년대 영남 출신 군부독재시대에 <수사반장> 속 범인 등 드라마에서 악역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주인공이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한 것은 2014년 <신의 선물―14일>에서 조승우가 연기한 정의로운 전직 경찰 기동찬이 처음이다.

그랬던 사투리가 이제는 캐릭터를 풍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지역 언어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땐뽀걸즈>는 경상도 말의 맛만으로도 조선소 사람들의 애환이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톱스타 유백이>에서 깡순은 “확 뽀사버릴라니까” 등의 무지막지한 말을 내뱉음에도 너무 사랑스러워 전라도 사투리가 귀엽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품 속에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많이 녹여내온 소설가 김종광은 “사투리는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방언을 통해 그 사람의 출신 배경이나 살아온 과정 등을 보여줄 수 있어 작품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톱스타 유백이> 제작진은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가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더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윤석진 교수는 “오랫동안 지역에 대한 편견이 언어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져왔는데 지금은 반대로 드라마를 통해 사투리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다”고 짚었다. 김종광 작가는 “과거에는 드라마에 사투리가 나와도 인구가 많은 경상도 방언 위주였는데, 이제는 방송이 다양한 방언을 존중하는 느낌”이라며 “풋풋한 인물들이 경상도, 전라도 등 지역의 말을 사용하면서 친근함을 준다”고 했다.

사투리는 드라마를 넘어 방송 전반의 콘텐츠로 확장되고 있다. 사투리를 사용한 뮤지컬도 나왔고, 사투리를 사용하는 연예인들도 예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외식사업가 백종원의 “맞쥬~” 같은 충청도 사투리는 유행어처럼 쓰이고, 부산 사투리를 강하게 쓰는 패션모델 배정남도 그 말투가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는 데 일조했다.

사투리를 정겨우면서도 아름다운 시어로 빚어온 이정록 시인은 “사투리도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여겨야 한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며 “지금은 표준어를 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새로운 문법을 창조해 그 안에서 재미를 느끼는 세태에서 젊은 시청자들이 사투리를 하나의 신조어로 받아들이며 즐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에서 사투리 사용의 파급력은 크기 때문에 극중에서 긍정적인 인물들이 사투리를 쓰면 지역 자체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질 뿐 아니라 언어의 보편성이 더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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