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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김대중 칼럼] 친박·비박 피 터지게 싸워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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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政權 잃고도 계속되는 야당 계파 싸움은 불치병 수준

지금 한국당엔 ‘물’이 들어와도 ‘노’도 없고 ‘저을 사람’도 없어

2월 전당대회 결과에 승복하고 ‘탄핵 졸업’ 않으면 앞날 없어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보수 야권 내의 친박-비박 싸움은 가히 태생적 불치병 수준이다. 집권 때 그 싸움으로 그들의 ‘대통령’을 잃고 정권도 넘어갔는데 이제 야당으로 쪼그라들어서도 여전히 피 터지게 싸운다. 좌파 정권의 득세로 수많은 국민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데도 친박-비박은 ‘네 탓’ 운운하며 여전히 그들만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다.

집권 세력의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야권에 기대가 조금씩 살아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더 싸운다. 이제는 '친박당'까지 거론하며 싸운다. SNS상에서는 '박근혜 탄핵'과 관련해 이른바 복당파 인사들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인격 살인이 횡행한다. 일부 지상(紙上)에는 '박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안에서 복수와 부활의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는 얘기도 등장한다.

지금 나라가 당면한 문제가 무엇이며 우리의 미래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데 아직도 친박-비박 싸움이냐고 지탄해봐야 소용없다. '너희는 짖어라. 우리는 싸운다'는 식이다. 때로는 설혹 이들이 정권을 되찾는다 해도 저런 아집과 독선으로는 지금의 집권 세력과 무엇이 다를 것인지 두렵고 무섭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고 있는가? 어쩌면 영어의 몸으로 인생의 최악을 경험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일반의 동정과 안타까움에 동조 또는 편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셈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자신들이 그 알량한 국회의원 자리에서 밀려나면 닥칠 수 있는 불이익이 그들을 전투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 싸움을 어떤 논리와 어떤 이성으로도 막을 수 없다면 실컷 싸우게 할 수밖에 없다. 피 터지게 싸우되 다만 그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 마당이 오는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이어야 한다. 전당대회가 싸움터이고 전환점이어야 한다. 표로 승부하는 것-그것이 민주적 방식이다. 그것이 정당성을 부여받는 길이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탄핵에 찬성했건 반대했건 당대표로 출마하는 사람은 당원과 국민 앞에 전당대회 결과에 승복해 일체의 파벌적 행태를 끊을 것을 서약해야 한다. 말로는 안 된다. 서약의 절차를 문서로 하고 당원 앞에 선서해야 한다.

엊그제 자유한국당에서는 친박-비박 양쪽의 핵심 인사 또는 중진 등 현직 의원 20여명을 당협위원장에서 퇴진시키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인위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해볼 만한 시작이다. 다만 그들에게 전당대회에 나가서 자기의 의사를 밝히거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게 하되 선거에서 지면 그 결과에 승복해서 2선으로 물러나든 당을 떠나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뒤탈이 없다.

또 그 과정을 통해 박근혜 탄핵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보수권에 치명적 몰락을 초래하고 좌파에 권력과 나라를 헌납하게 됐는지 그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당원과 국민 앞에 공론화돼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유한국당은 이번 전당대회를 '박근혜 탄핵'에 대한 당의 백서(白書)를 밝히는 자리로 만들고 이 대회를 전환점으로 삼아 탄핵에서 졸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탄핵으로 갈리고 또 '박근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당은 누가 대표가 되든 그가 어떤 정책으로 나가든 당의 화합은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친박-비박이 다시 주류-비주류로 바뀌어 영원히 적대하고 끝없이 저주하며 만년 소수 세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아니,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명맥은 거기서 끝날 것임을 감히 장담할 수 있다.

'박근혜'도 거기서 정치적 생사가 갈린다. 그 문제는 당이 총선에서 이겨 다수당이 되고 권력을 되찾았을 때 해결되는 것이 정도(正道)다. 그렇지 않고 그 문제가 문재인 정권의 야당 분열 책동의 카드로 이용되는 상황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 전 대통령도 '친박의 득세'로 부활하기보다 자유한국당의 국민 지지 회복에 따라 구명(救命)되는 것이 명분 있는 길이다. 그것이 그가 죽어서도 사는 길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전당대회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전당대회가 친박-비박의 막장 싸움터로만 시종하고 ‘원수’로 덧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또 다음 대통령 주자들의 예비 출정식 정도로 치부되면 한국당의 앞날은 기대할 것이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오히려 야당이 새겨들을 만한 조언(助言)이다. 한국당에 ‘물’이 들어오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한국당에 지금 저을 노가 없고, 있다 해도 노를 저을 사람이 없다. 아니 노를 저어야 한다는 인식 전환 자체가 없다면 대한민국의 보수는 끝이다.

[김대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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