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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찍히면 끝장…법이 방치한 흉기 `SNS 마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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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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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추정원칙'을 세우고 수사관을 자처하는 무책임한 불특정 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다. 한 번 피의자로 특정하면 사진 한 장, 온라인상에 떠 있는 글 하나만으로 혐의를 확정할 뿐 피의자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인간관계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수사상 오류를 피하기 위해 혐의 확정 전까지 수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공식 수사기관들과 달리 이들은 개인정보 퍼뜨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무책임한 정보가 확산되는 순간 '마녀사냥'의 대상은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는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가해자를 단정 짓고 신상을 파헤쳐 퍼뜨리는 '마녀사냥'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 어린이집 교사를 두고 학대 정황을 반박하는 동료교사·학부모 등 주변인들의 평가가 잇따르면서 일부 '맘카페'를 중심으로 한 무분별한 마녀사냥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6일 경기 김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2시 50분께 경기도 김포 한 아파트 앞에서 인천 모 어린이집 보육교사 A씨가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여기서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내 의도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야 그때 일으켜 세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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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1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 상태였다. A씨가 어린이집 나들이 행사에서 원생 한 명을 밀치는 걸 봤다는 근처 시민의 제보가 있었던 것. 문제는 진위 여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 사실이 인천과 김포 인터넷 맘카페에 확산되면서 발생했다. 일부 회원들은 A씨를 가해자로 단정하고 비난했고 학대 의심 아동의 친척은 해당 어린이집을 찾아가 고성을 지르고 교사에게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실명과 어린이집까지 공개되는 등 평생 겪어보지 못한 수모를 당한 A씨는 곧 결혼할 남자친구를 남겨두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무분별한 마녀사냥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지고 있다. 15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은 "아동학대로 오해받던 교사가 지역 맘카페의 마녀사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며 "해당 부모와 교사 간 오해도 풀었는데 해당 카페는 고인에 대한 사과나 반성 없이 관련 글을 삭제하고 강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4만9000여 명의 청원 동의를 받았다.

지난 수년간 사회적 이슈가 되며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한 대표적인 온라인상 '마녀사냥' 사례들을 재조명하고 스스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블랙박스 영상 입증을 통해서야 맘카페의 집중 비난을 막을 수 있었던 지난 8월 '난폭운전 태권도 차량 사건', 정상적으로 안전운행 규정을 지키고도 '하차 문을 안 열어줬다'는 일방적 주장에 비정한 사람이 된 '240번 버스기사 사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을 받은 2015년 '바늘학대 어린이집 사건', 손님에게 배를 걷어차였음에도 거꾸로 소문이 나 불매운동의 피해 대상이 됐던 '채선당 사건' 등이다.

특히 일부 맘카페가 이 같은 마녀사냥의 중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원 게시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맘카페 회원임을 자처하는 손님들의 갑질과 커뮤니티 마녀사냥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청원들이 올라오고 있다. '맘카페 강제 폐쇄'를 요구한 한 게시자는 "본연의 활동을 망각하고 지역 상권을 돌며 마음에 안 들면 거짓 글을 올리고 있다"며 "한 사람의 생명을 몇 글자로 앗아가는 이들을 꼭 처벌해달라"고 요구했다.

정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인터넷상 게시글에 동조하거나 퍼 나르는 것도 수 백, 수십 명일 경우 처벌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이지 이론상으로는 명예훼손 공범이 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용건 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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