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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그가 떠난 정의당에 ‘8천명의 노회찬’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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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르포- 노회찬 떠난 뒤 정의당의 풍경

‘난 자리’로 확인되는 노회찬 존재감

그의 회의석상엔 윤소하 직무대행

출연하던 방송들도 그의 부재 절감

그의 말은 골리앗 쓰러뜨리는 차돌

9월 국회 열리면 공백 두드러질 듯

사망 뒤 당 지지율 지방선거 때 3배

추천인 ‘노회찬’ 쓰고 8233명 가입

통합진보당 때 흩어진 지지층 귀환

이정미 대표 “5석뿐인데 지지율은

제1야당인 간극 메우는 것이 고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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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가 2018년 7월23일 생을 마감했다. 갑작스런 죽음에 수많은 국민들이 함께 슬퍼하고 울었고 정의당 지지율은 올랐다. 당원 가입도 폭발적이다. 국민적 성원을 오롯이 유지하는 건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충격→놀람→감사→불안’을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듯한 정의당 사람들의 요즘을 들여다봤다.



국회 223호 정의당 당대표실. 16일 오전 9시30분에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이정미 대표의 오른쪽 옆자리에는 윤소하 원내대표 직무대행이 앉았다.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를 향해 이 대표는 “여성들의 간절한 용기를 짓밟은 사법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당대표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타원형 테이블에 모여 앉았기에 빈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공백은 느껴졌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안희정 1심 무죄 선고를 어떤 표현으로 질타했을까?

“정치개혁 민생개혁의 길로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회의실 벽을 메운 배경막의 문구가 유서를 상기시켰고 그를 떠올리게 했다.

부재

“그는 존재감이 달랐다. 말을 하건 안 하건 회의장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뭘하든 든든하게 백업을 해줄 것 같은 보호망이 없어진 느낌이다.”(최석 정의당 대변인)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만 노회찬은 ‘든 자리’만으로 엄청난 무게감을 뿜어내던 정치인이었다. 정의당 사람으로서는 ‘난 자리’가 더욱 시리고 아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가 더 이상 출연할 수 없는 과거 프로그램을 접하면서 노회찬의 부재를 절감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 <교통방송>(tbs)의 ‘김어준의 뉴스공장’, 목요일 <제이티비시>(jtbc) ‘썰전’에 그는 ‘고정’이었다.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노회찬이 출연하는 코너에 ‘노르가즘(노회찬+오르가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이다를 넘어선 쾌감을 주는 노회찬의 입담을 향한 찬사였다. 정의당의 20대 당직자인 ㄱ씨는 “‘뉴스공장’과 ‘썰전’을 항상 챙겨보고 들었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내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대중들의 이해를 구하는 언어는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노회찬의 말이 사라진 뒤 폭발적이었던 반응도 당연히 없어졌다. 그를 마지막까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도왔던 김종철 원내대표 비서실장도 “사람들이 더 이상 ‘뉴스공장’과 ‘썰전’ 얘기를 안 할 때” 노회찬이 없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방송을 통해 노회찬의 촌철살인이 전파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노회찬만큼 자유한국당과 제대로 싸우는 사람이 누가 있었냐. 시원하다. 민주당도 이렇게는 못한다”며 성원했다.

노회찬이 현란하게 구사하던 ‘언어의 드리블’은 엄청난 정보 수집과 학습의 결과물이었다. 노회찬은 생전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에버노트’ 앱을 이용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이슈를 100여개의 폴더에 주제별로 저장하고 틈틈이 섭렵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육중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차돌멩이 같았다. 정치현실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는 소수정당 정의당에게 노회찬의 돌멩이는 적진을 헤집어놓는 치명적 무기였다. 인터넷에선 ‘노회찬=드립’으로 통했다. 정의당 공식 논평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도 사람들은 “역시 노회찬”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최석 대변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로 토론을 위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게 기득권의 특징인데, 노회찬 전 의원은 아주 쉬운 말과 비유로 이 장벽을 허물어버렸다”고 평가했다.

노회찬의 방송은 정의당을 위한 마이크였고 스피커였다. ‘썰전’의 패널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대체됐다. 정의당의 마이크 하나가 꺼진 셈이다.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는 지난 8일 출연한 이정미 대표에게 ‘노르가즘 코너’가 정의당의 몫이라며 “정의당에서 한 명을 차출해서 보내주셔야 한다”고 채근했다. 이정미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 정치를 대하는 철학에서 묻어나왔던 그의 방송을 누가 대체할 수 있겠냐”며 “과도기로 오래 갈 수는 없지만 일단 뉴스공장 인터뷰는 내가 메꾸고 있다”고 말했다.

노회찬의 죽음으로 정의당 의석은 6석에서 5석으로 줄었다. 그리고 14석의 민주평화당과 손잡고 구성했던 공동 교섭단체도 무너졌다. 그래서 국회 각 상임위에서 의사 진행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간사 역할도 잃었다. 상임위별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교섭단체 의원의 지위를 잃은 것이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당의 3선 중진이자 원내대표였던 그의 ‘빈 자리’는 더욱 크게 다가올 것이다. 정의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처럼 노회찬이 선도할 의제가 많이 있었다. 국회가 열리면 그의 공백은 더욱 도드라질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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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한국갤럽이 8월 둘째주(7~9일) 전국 1003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16%였다. 6·13 지방선거 전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에 조사된 5월 다섯째주 조사 때 지지율 5%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뛴 것이다. 8월 셋째주(14·16일) 지지율도 첫째주와 같은 15%로 큰 변동 없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정의당 지지율은 6·13 지방선거 뒤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서 사표 심리 때문에 소수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못했다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지로 해석됐다. 이 감정은 노회찬의 죽음으로 더욱 증폭됐다. 당원 가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노회찬이 목숨을 끊은 지난 7월23일 이후 8월16일까지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8233명의 국민이 정의당원이 됐다. 새 당원 이하나(43)씨는 “그의 죽음 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내가 그동안 그를 지지하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었다”며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의당원이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오래 잘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종철 실장은 “그동안 진보정당이 갈려 있어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의 빚을 덜어야겠다는 분도 꽤 많다”고 전했다. 극단적인 정파 대립으로 쪼개진 ‘통합진보당 분당’ 사태 뒤 방관하고 있었던 지지층의 귀환으로도 해석되는 부분이다.

기존 정의당 당원 수는 3만5천명이었고 그중 매달 당비를 내면서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당권자’가 2만5천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규 당원 8천명은 어마어마한 수치다. 정의당 당원은 생계가 곤란한 경우가 아니면 매달 1만원 또는 그 이상을 당비로 납부한다. 정의당 당직자는 “8천명 당원들이 내는 한 달 당비는 1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정치인 노회찬의 발목을 묵직하게 잡았던 돈 문제에서 정의당은 과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불안

정의당 사람들은 노회찬의 갑작스런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고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물론 전국 분향소를 찾은 국민들의 추모 열기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이 지지와 성원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불안은 각자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최석 대변인은 “지지율 상승은 노회찬 원내대표가 당에 준 마지막 선물”이라며 “이걸 견고하게 다지는 게 우리 몫이어서 부담감이 크다”고 말했다. 김종철 실장은 “지지율이야 오를 수도 낮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우리에게 보내준 성원에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지역활동을 오래 한 정의당원은 “지난해 대선 뒤에도 심상정 후보에게 후원금이 몰리고 지지율이 올라갔지만 그런 성원이 올해 지방선거에서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우리가 뭘 줄 수 있어야 이들의 표까지 얻을 수 있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16% 지지율은 자유한국당마저 능가하는 수치다. 그러나 정의당의 현실은 원내 5석의 소수정당이다. 이정미 대표는 “당은 5석인데 지지율로는 제1야당인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가 고민”이라고 했다. 당직자 ㄱ씨는 “그의 죽음 뒤 충격, 놀람에 이어 감사, 부담감 같은 감정이 얽혀있다”며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이렇게 지지율이 높았던 적이 없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고 발전시켜나갈지 각자의 해석이 있지만 답을 찾지 못해 두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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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또는 희망

정의당 당원 신청서에는 추천인 란이 있다. 최근 가입한 상당수 당원들은 여기에 ‘노회찬’이라고 적었다. 정의당 사람들은 8천명의 신규 당원에 주목하고 있다.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은 ‘대체 불가’지만 그의 정신을 기리는 새 당원들은 ”8천명의 노회찬“(김종철 실장)이라는 것이다. 정의당은 우선 당원 교육을 통해 이들을 만나고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2시간짜리 신입당원 교육은 시도당이나 지역위원회 단위로 한 차례로 끝내지만 이번에는 같은 교육 일정을 3차례 잡아 새 당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정의당의 역사와 정책노선을 소개하는 기존 커리큘럼에 ‘노회찬의 꿈’이라는 과정을 추가했다. 당 지도부도 지역을 돌며 신규당원을 만나고 있다. 최근 경기 시흥의 신입당원 교육에 참석한 이정미 대표는 자신의 손을 잡고 펑펑 우는 신입당원을 만났다. 그는 “정의당에 큰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8천명의 노회찬’이 운집하면서 당에서는 ‘대중적 진보정당’이라는 화두에 집중하고 있다. 당직자 ㄱ씨는 “노회찬 죽음 뒤 정치자금법 개정 문제를 얘기하는데 그건 그분이 왜 돌아가셨는지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왜 많은 사람이 노회찬을 추모했는지가 중요하다. 그건 그가 하고자 했던 대중적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앞에서 깃발 들고 달려가는 방식이 아니라 힘없는 투명인간 옆에 함께하면서 수권 능력을 키우는 정당을 바란다는 것이다. 6411번 첫 차를 타는 사람들과 행복한 길을 함께 가려 했던 것이 노회찬의 꿈이었다. 지금 정의당의 지향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를 위해 노력했던 노회찬 같은 정치인을 키우는 건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정의당의 몫이다.

김태규 서영지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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