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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바다냐 호수냐”…20여년 카스피해 논쟁 일단 봉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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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이란 등 연안 5개국 “어느 한쪽으로도 간주 안돼, 특별한 법적 지위 부여할 것”

영해·조업권 설정 등 합의

해저분할 문제는 결론 못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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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 연안 5개국 정상들이 12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악타우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카스피해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에 합의했다.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연안 5개국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영유권과 자원 배분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핵심 이슈였다. 카스피해가 바다인지, 호수인지에 따라 영유권과 자원 분배 양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회담 후 회견에서 “해안선에서 15해리까지를 영해로, 그 다음 10해리까지를 배타적 조업수역으로 설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5개국 동의를 거쳐 카스피해 해저 송유관 건설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카스피해는 연안국들에만 속한다”면서 연안국 외 국가들의 함대 배치를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 외 세부적인 협정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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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국 정상들이 카스피해 법적 지위 규정에 합의했다고 하지만 아직 모호한 부분이 많다. 영해와 배타적 조업권 설정은 합의를 이뤘지만, 더 중요한 해저 경계 설정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카스피해를 바다로 규정한다면 국제 해양법에 따라 해안선을 기준으로 각국이 독점적 구획을 점유할 수 있다. 해안선이 길고 부존자원량이 풍부한 카자흐스탄 등이 가장 큰 이득을 얻는다. 반면 해안선이 가장 짧고 자원량도 부족한 이란은 손해다. 그래서 이란은 카스피해를 호수로 규정해 5개국이 균등하게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로하니는 이날도 “해저 경계 문제는 추가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5개국 정상들은 협정 체결을 위해 바다인지 호수인지 명확하게 규정하는 대신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우회로를 찾았다. 앞서 그리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은 지난 8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카스피해는 지리적 특성상 바다로도 호수로도 간주할 수 없다”면서 “특별한 법적 지위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BBC 등은 이란이 다른 4개국의 반대를 꺾고 카스피해를 호수로 규정해 자원을 공동 개발하자는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이란이 잠재적 패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함대의 접근 금지 선언은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해외 함대 배제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외교적 승리로 간주할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중국이 카자흐스탄 등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카스피해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차단했다”고 전했다.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은 송유관 건설을 대가로 얻었다. 카스피해 동편의 이들 나라는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를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애를 썼다. 카스피해를 횡단하는 해저 송유관은 그 주요 방편이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들 나라의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물량이 확대되는 것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5개국 동의’를 전제로 한다는 점 등에서 송유관 건설이 언제, 어떤 식으로 현실화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오히려 러시아가 5개국 협력을 확인하면서 안보상 이득을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스피해는 아프가니스탄, 중동 지역과 인접해 군사안보적 중요성이 크다.

카스피해는 소련과 이란이 독점적으로 관리해왔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상황이 달라졌다.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카스피해 연안 신생 독립국들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 잠재매장량은 480억배럴, 천연가스는 8조3000억㎥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1㎏당 2만5000달러를 호가하는 철갑상어알(캐비아)의 세계 최대 산지이기도 하다. 전 세계 캐비아의 90%가 이곳에서 나온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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