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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Why] 허기도 넷, 의자도 넷… 아귀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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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준의 酒방] '정이품'의 아귀수육

조선일보

아귀는 여러 이름과 이야기들을 가진 생선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아귀는 아구로 잘못 불린다. 아마 겹모음 'ㅟ'보다 홑모음 'ㅜ'가 발음하기에 더 좋은 까닭도 있을 테고 아귀의 생김새가 '입'을 속되게 이르는 방언인 '아구'를 연상하게 하는 것도 어쩌면 이유가 될 것이다.

인천에서 아귀는 주로 물텀벙으로 불린다. 아귀가 상품 가치가 없던 시절, 뱃사람들은 그물에 걸려 올라온 아귀들을 다시 바다에 텀벙텀벙 던졌다고 한다. 반면 남동해안가에서는 물꿩으로 불리기도 한다. 적지만 담백한 살맛이 꿩고기를 닮았기에.

아귀가 불교적 세계관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는 말도 있다. 욕심으로 업과 악을 쌓은 자가 사후에 가게 된다는 아귀도(餓鬼道). 굶주림으로 가득한 세계. 하지만 실제 아귀는 굶주림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지느러미를 미끼처럼 이용해 사냥하는 바다의 포식자다. 여러 사연과 이름을 가진 아귀지만, 막상 조리법은 다양하지 않다. 흔히 먹는 아귀찜, 그리고 아귀탕이 사실상 대부분이다. 여기에 반건조 아귀를 쓰는가 혹은 생물을 쓰는가에 따라 조금 달라질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귀수육이라는 음식을 만났다. 진한 양념에 콩나물이 비벼진 아귀찜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아귀의 참맛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의 서북쪽 끝, 대화동 인근에는 개성 있는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정이품. 지리산 흑돼지와 아귀, 병어, 민어, 갑오징어 등의 다양한 해산물을 함께 내놓는 집. 그렇지만 이곳을 찾을 때마다 사람들 앞에는 으레 아귀수육이 올려져 있다. 매일 목포에서 공수받는다는 생물 아귀를 찜통에서 쪄내고 거기에 콩나물과 미나리가 곁들어진다. 아귀는 큰 생선이었구나, 아귀의 위장은 곱창처럼 쫄깃하구나, 아귀의 간은 진하고 고소한 맛이구나, 하며 감탄하게 되는 맛. 담백한 아귀 살에 반찬으로 나오는 전라도식 파김치와 갈치속젓을 곁들이면 입안이 온갖 맛으로 가득해진다. 워낙 푸짐한 덕에 친근한 이들 한 네명쯤 같이 가도 좋을 곳이다. "다리가 넷, 거느린 의자가 넷, 의자 넷의 다리도 넷, 둥그런 모서리도 넷, 허기(虛飢)도 넷,"(장석남, '맑은 밥' 부분)

정이품(031-917-0119)

아귀수육(5만원), 아귀해물찜(6만원)





[시인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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