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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더 한장] 추모 현장에 희생자 조롱글, 내용 확인 없이 사진 보도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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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일 오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전날 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현장에서 한 여성이 추모의 뜻을 담은 국화꽃을 내려놓고 있다. /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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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가 발생하면 사진기자들은 오랫동안 현장을 지킨다. 사고 현장은 어떤 상황인지, 구조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감식하는 장면 등 사고 후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을 기록한다. 이후 추모 장소가 마련되면 추모객들의 행동에 의미를 두고 촬영한다. 헌화하고, 절하고, 추모 쪽지를 붙이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많은 기자들이 기다린다. 시민들이 추모하는 모습을 담을 때면 조심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최근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쪽지가 발견돼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너의 다음 생을 응원해♡’라는 조롱 문구를 쪽지에 써서 놓아둔 30대 여성이 특정됐다. 지난 3일 오전, 추모 공간을 취재한 타사 사진기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이 여성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물며 흐느꼈다고 한다. 촬영을 마치고 초상권 허락을 구하기 위해 접근하니 사고 희생자의 또래 동료라고 밝혔다고···. 이후 이 여성이 남긴 쪽지 내용에서 이상함을 느낀 기자들은 논의를 거쳐 쪽지 붙이는 장면을 보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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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 추모공간에서 발견된 사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쪽지들.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로 논란이 커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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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4일 헤럴드경제 보도에 따르면 ‘망자의 13년 지기 친구’라고 밝힌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의 행위가 ‘그림’이 된다고 검증 없이 보도했으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기자가 편의를 위해 초상권 해당자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되는 사례다. 취재 경쟁이 치열한 현장에서도 기자의 정확한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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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한 경찰관이 추모글을 빙자한 조롱 표현 쪽지들을 수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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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추모 공간은 상징적이다. 진심을 담아 추모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때다 싶어 비상식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4일 20대 남성 A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해 조사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시청역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토마토 주스가 돼 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간 혐의를 받고 있다. 또다른 모욕투의 쪽지글을 작성한 40대 남성 B씨를 특정해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추모 현장에 고인을 욕되게 하는 글을 남기면 ‘모욕’죄로 형사처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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