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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나 떠나는 날엔] [8] 마지막 날, 인생의 정상에 오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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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조선일보

엄홍길 산악인


오른발이 타들어가듯 매웠다. 눈 속에 처박혔던 오른발을 겨우 끄집어냈을 때 두 눈을 의심했다. 발이 180도 꺾여 다리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 4번째 시도 때의 일이다. 해발 7600m, 경사 60도 얼음사면에서 미끄러져 추락하는 셰르파를 구하려다 같이 떨어졌다. 아연실색한 셰르파에게 발을 제자리로 돌려달라 말했다. 부러진 발을 꺾는 고통은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얼추 제 모습을 찾은 다리에 대나무 표식기를 잘라 부목 대목으로 묶어서 고정했다. 살기 위해 절뚝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입이 말라 단내가 진동했고, "살자, 살자, 살아야 한다"를 되뇌었다. 정상에서 멀어질수록 고통은 커졌다.

기적적으로 살아서 한국에 돌아왔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완치돼도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라는 진단을 받았다. 산악인에게 산을 오를 수 없는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결국 사고 10개월 만에 다시 안나푸르나에 도전했다. 모든 사람이 "이번엔 정말 죽을 것"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내 의지는 확고했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러 가는 것이었다.


조선일보

안나푸르나의 높이는 8091m다. 산악인들은 해발 8000m 이상을 '죽음의 지대'라 부른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신이 등정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추위에 살이 찢기고, 근육통에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정상에 갈 수 있다면 죽자"고 각오하는 순간부터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무감각하다. 그토록 갈망했던 정상에 올라선 뒤에도 환희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도 텅 비어 고요하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 죽음이 없다면 히말라야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인생을 오르고, 그 정상에는 죽음이 기다린다. 죽음이 있기에 산을 오르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

1999년 5번째 시도에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았다. 오랜 친구이자 후배인 지현옥과 함께였다. 먼저 정상을 오른 뒤 내려오는 길에 그를 만났다. 계속 오를 수 있겠느냐 물으니 그는 "괜찮아요, 괜찮아요"라며 묵묵히 정상으로 향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정상에 도착했다 내려오는 길에 다른 대원과 함께 실족사(失足死)했다. 무전이 되지 않아 생사를 모르고 한동안 산 중턱 캠프에서 정상만 바라봤다. 하루가 지났을 때 산이 그를 데려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고, 축축한 눈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엄홍길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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