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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월드컵 보면 러시아가 보인다] 멕시코와 결전의 장, 로스토프나도누… '고요한 돈강'의 주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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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러시아월드컵]

조선일보

김봉철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원(국제학부 교수)


"형제들이여, 혼란과 타락의 시대에는 형제를 판단하지 마라." "인간은 자기가 가진 꿈을 안고 살아간다."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그리고 혁명군과 반혁명군으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점철된 내전을 겪은 러시아 사람들 이야기를 묘사한 미하일 숄로호프의 소설 '고요한 돈강'에 나온 구절들이다. 숄로호프는 이 작품으로 1965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이 23일 밤 12시 멕시코와 2차전을 치르는 '로스토프나도누(Rostov on Don)'가 바로 이 '고요한 돈강'의 주요 무대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1000㎞ 떨어져 있다. 로스토프나도누라는 이름은 '돈강에 위치한 로스토프'라는 뜻이다. 모스크바 주변에 위치한 '대(大)로스토프(Rostov the Great)'와 구분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수용소 군도' '암병동' 등으로 유명한 197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도 이곳 로스토프나도누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로스토프나도누 도시 중심을 흐르는 돈강은 흑해와 연결돼 있는 인근 아조프해로 흘러간다. 러시아 최초 황제인 표트르 1세는 이곳을 서유럽으로 나가는 출구로 만들려고 했다. 부동항(不凍港)을 통해 남쪽으로 나가 유럽 선진 문물을 수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크림 한국과 그 후원자인 오토만 제국이 있었다. 표트르 1세는 방향을 발트해로 돌려 그곳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했다. 그의 처음 계획이 성공했다면, 로스토프나도누는 '남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될 수 있었다.

로스토프나도누는 한국인과도 암울한 역사를 공유한다. 소비에트 시절에 고려인이라 불리는 한국인들이 비루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계절 노동자로 이곳에 와 상당수가 정착했다. 로스토프나도누와 주변 지역에는 지금도 7만명이 넘는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한국어교육원도 있다.

4만5000명 수용 규모로 건설된 로스토프 아레나는 돈강의 왼쪽에 위치해 자연친화적으로 평가받는다. 경기장 지붕은 바로 옆으로 흐르는 돈강의 곡선형 물줄기를 형상화해서 반복되는 원형 이미지로 만들었다. 관람석의 높이를 다양하게 제작해 관중은 축구를 보면서 돈강의 주변 경치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곳은 러시아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 소속 FC 로스토프가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김봉철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원(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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