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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팩트체크] 북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증거 인멸 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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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한이 12일 밤 ‘외무성 공보’를 통해 밝힌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북부핵시험장’ 폐기 방식을 두고 “증거 인멸 쇼”라는 등의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핵 전문가 등의 도움을 얻어 이런 비판의 적절성 여부를 따져봤다.

■ 1·2번 갱도 폭파는 ‘증거인멸’? 일부 언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핵 전문가그룹의 사찰·검증 없이 핵실험장 폭파·폐기는 북한의 핵능력 증거 ‘인멸’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과한 비판’이라고 입을 모은다. 북한의 1~6차 핵실험이 진행된 1번(동쪽·한번), 2번(북쪽·다섯번) 갱도를 폭파·폐쇄해도 ‘핵실험 증거’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폭파·폐쇄로 갱도가 막히더라도 지상에서 기폭실까지 구멍을 뚫어 핵시료를 채취할 수 있고, 앞으로 사찰단이 북쪽한테서 ‘핵실험 데이터’를 넘겨받아 검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아직 핵실험을 해보지 않은 3번(남쪽)·4번(서쪽) 갱도는 이번에 폭파·폐기하지 않고 원형을 보존해 이후 비핵화 과정 진전과 맞물려 국제 핵전문가들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1·2번 갱도에서 실험한 경험에 기반해 더 진일보한 방법으로 3·4번 갱도를 만들었을 터라 이 갱도의 기술 수준을 보면 북한의 핵실험 기법을 알 수 있다”(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것이다.

■ 핵실험장 폭파는 ‘쇼’인가? 북한이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고도 핵실험을 한 전례에 비춰, 이번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폐기 발표를 ‘쇼’로 폄하하는 비판이 있다. 우선 냉각탑이 영변 원자로에 딸린 설비에 불과하다면, 핵실험장은 북한 핵능력의 검증·과시의 ‘본체’라 그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폭파·폐쇄한 갱도의 재활용 우려도 제기되는데, 현실성이 없다는 반론이 많다. 안진수 전 원자력통제기술원 실장 등은 “입구만 막는다면 나중에 재활용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북한이 말하는 것은 갱도 중간 중간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시킨다는 것”이라며 “이미 무너진 곳을 다시 뚫는 작업은 대단히 위험하다. 차라리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 뚫는 게 낫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국제 핵 폐기 역사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이 자발적으로 핵실험장을 공개 폐기한 선례가 없다. 따라서 핵실험장 폐기의 공개 수준과 방식이 어떠해야 한다는 국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일단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비핵화’와 관련한 진정성을 ‘실물’로 내보이려는 북한 쪽의 ‘선의’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은 까닭이다.

■ 전문가가 안가면 제대로 확인할 수 없나? 이 또한 ‘과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사찰, 검증 전문 인력이 폭파 현장에 가더라도 바로 시료 채취 등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안진수 전 실장). 전문적 검증은 ‘현장 관찰’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 어차피 시료 채취를 포함해 전문적 데이터 확보·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과 장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 핵전문가 그룹의 초청 여부에 대해 아직 명시적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어 상황 변화의 여지가 있다.

■ 갱도 4개뿐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일부 언론은 풍계리에 북한이 폭파하겠다고 밝힌 4개의 갱도 외에 다른 갱도를 숨겨뒀거나 다른 지역에 비밀 핵실험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1·2번 갱도보다 훨씬 진전된 기술로 만들어진 3·4번 갱도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적인 갱도에 대해 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짚었다. 풍계리 외에 비밀 핵실험장 존재 여부에 대해선 정부는 물론 다수의 핵전문가들이 북한의 좁은 국토와 지형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안 전 실장도 “이미 4개 갱도가 있는데 추가 갱도나 별도 핵실험장이 존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 폐기? 폐쇄? 뭐가 맞나 현재 정부는 애초 ‘폐기’라 발표한 북한 용어를 ‘폐쇄’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14일 아침 브리핑에서 “정부 공식 용어를 ‘폐기’로 수정한다”고 말했다. 폐쇄는 영어로 ‘셧 다운(shut down)’, 곧 들어가지 못하게 차단을 한다는 뜻에 가깝고, 폐기는 아예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dismantlement)이다. 북한 외무성 공보 영문판도 ‘dismentlement’로 표현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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