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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비로 꼬인 가을야구 ‘시구 일정’…구단, 시구자 섭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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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어린이팬이기도 했던 배우 김강우가 13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엘지 트윈스와 삼성 경기에 앞서 시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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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구에는 비가 왔다.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 결국 플레이오프 2차전이 다음날(15일)로 연기됐다. 14일 시구자로 예정됐던 이는 아이돌 그룹 엔씨티(NCT)의 제노였다. 제노는 경기 직전까지 라이온즈파크에서 이호성(삼성)과 함께 시구 연습을 했던 터. 하지만 일정 상 15일 시구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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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마케팅 부서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15일 시구자를 구해야만 했다. 다행히 “파란 피가 흐른다고 할 만큼 어릴 적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었던 배우 허형규를 섭외했다.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 출연했던 허형규는 지난 9월초에도 시구를 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 일정이 하루씩 밀리면서 3, 4차전을 홈에서 치르는 엘지(LG) 트윈스 또한 시구 일정이 꼬였다. 비 등으로 경기 일정이 변경되면 늘 겪는 일이다. 그래서 구단 등은 시구 1~3순위 후보를 미리 정해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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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플레이오프 2차전 시구자로 예정됐던 아이돌 그룹 NCT의 제노. 비가 와서 경기가 연기되는 바람에 그는 첫 공을 던질 수 없었다. NCT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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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시즌 시구자는 한국시리즈를 제외하고 홈 구단에서 섭외한다. 케이티(KT) 위즈는 준플레이오프 3차전 때 김주일 응원단장을 시구자로 정했는데, 케이티 측은 “원년부터 고생해 왔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으나 미리 대상자를 섭외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5, 6위 결정전을 치러야 했고, 역대로 5위 팀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한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규리그 5위팀이 4위팀을 꺾는 최대 이변을 연출했고, 이후 부랴부랴 준플레이오프 홈구장 시구자를 ‘세팅’했다. 시간적 여유가 있던 두산 베어스는 시구자를 섭외했지만, 이들이 마운드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와일드카드 1차전 때 뉴진스의 민지에 이어 준플레이오프 3, 4차전 시구 예정자도 최정상 걸그룹 멤버였다.





시구자 섭외는 구단별로,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엘지, 두산 등 서울 연고의 구단들은 비교적 쉽게 시구자를 섭외한다. 이동 거리가 없기 때문에 1~2시간 정도면 시구 행사가 끝나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나 연예인 소속사들은 새로운 음반이 나오거나 드라마, 영화를 홍보할 일이 있을 경우 서울 구단 쪽으로 먼저 시구 의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수도권의 경우는 다르다. 행사비 없이 유니폼 정도만 구단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단 1~2분의 미디어 노출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거리상 거의 하루를 통째로 날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비수도권 구단의 경우 유니폼 외에 소정의 교통비를 따로 지급하기도 한다. 시구 여부를 문의하면, 500만원가량의 행사비를 요구하는 연예인도 있다고 한다.





TV, 유튜브 등을 통해 연예인 등 셀럽이 “○○ 구단 찐팬”이라고 언급하거나 “시구를 하고 싶다”고 말해도 실제 시구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다. 비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TV를 보고 소속사에 연락해도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이후 접촉이 잘 안된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리더 에스쿱스가 그랬다. 대구 출신의 에스쿱스가 한 방송에서 “삼성 라이온즈 팬”이라고 말한 뒤 삼성 구단은 섭외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빡빡한 세븐틴 스케줄 탓에 시구 날짜를 잡을 수 없었다.





삼성의 경우 레드벨벳의 아이린 시구가 예정돼 있다가 취소된 적도 있었다. 2018년 4월1일에 시구가 잡혀 있었는데 시구를 앞두고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삼성 구단에 연락이 왔다. 남북한 화해 모드 속에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합동 공연을 하게 되면서 아이린의 시구를 빼달라고 요청한 것. 레드벨벳을 대신할 시구 후보자를 추려서 달라고 했고, 결국 당시 인기가 올라가던 모델 한현민이 대신 시구를 하게 됐다. 한현민은 한화 이글스 팬이지만 그의 할머니가 삼성 팬이었다.





그나마 전국적인 팬덤이 강한 기아(KIA) 타이거즈는 비 수도권 구단이지만 연예인 시구 문의가 꽤 있는 편이다. 기아 관계자는 “광주 쪽에 연고가 있는 연예인의 소속사에서 문의가 온다. 올해는 성적이 좋아서 그런지 작년과 비교해 시구 문의가 늘었던 편”이라고 했다. 한국시리즈 시구는 KBOP(한국야구위원회 마케팅 자회사) 콘텐츠팀이 하기 때문에 올해 기아 구단이 직접 나서는 시구자 섭외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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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가 없는 미국 입양아 애덤킹(한국명 오인호)군이 지난 2001년 4월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 앞서 시구를 하는 모습. 여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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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구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시구자로는 2001년 잠실 개막전(두산-해태전)에서 첫 공을 던진 애덤 킹(당시 9살·한국명 오인호)이 있다. 킹군은 선천적으로 뼈가 굳어지며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희소병을 앓고 있었는데 4살 때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소년이었다. 그는 티타늄 두 다리와 목발을 하고 마운드에 올라 힘차게 공을 던졌다. 킹군이 당시 했던 말은 “내가 던지는 공에 꿈과 희망을 실어 한국의 친구들에게 선사하겠다”였다.





KBOP는 현재 한국시리즈 시구자 섭외가 한창이다. 작년처럼 야구 발전에 기여한 야구 원로들이 섭외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엘지와 케이티가 맞붙은 작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는 엘지의 마지막 우승(1994년) 주역이었던 김용수 전 엘지 코치가 했다. 2차전 시구는 배우 정우성, 3차전 시구는 조범현 케이티 원년 감독, 4차전 시구·시타는 스포츠계 레전드인 이상화, 진종오가 맡았다. 5차전 때는 한국프로야구 명장들인 김성근, 김응용, 김인식 감독이 첫 공을 던졌다. 올해는 어떨까. 킹군의 말처럼 한 번쯤은 ‘꿈과 희망’을 던지는 무대가 됐으면 좋겠다. ‘스토리텔링’이 듬뿍 담긴 그런 시구 말이다. 물론 야구계 원로 예우도 하면서.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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