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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내년엔 예루살렘에서” 유로비전 우승 소감이 비판 받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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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네타 바르질라이 우승 직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발언

예루살렘 둘러싼 중동 분쟁에 또 다른 갈등 촉발했다는 비판 일어


한겨레

유로비전 우승자인 이스라엘 출신의 네타 바르질라이. 사진 유튜브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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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의 음악 축제 가운데 하나인 ‘유로비전 노래 경연’에서 이스라엘 대표가 우승을 차지한 뒤 예민한 중동 정치 상황에 갈등을 더할 수 있는 발언을 해 파장이 일고 있다.

주인공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제63회 ‘2018 유로비전 노래 경연’에서 이스라엘 대표로 참가해 우승한 네타 바르질라이(25)다. 네타는 우승을 차지한 뒤 청중과 TV 카메라 앞에서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고 외쳤다. 지난 10일 이스라엘과 시리아에 있는 이란군 사이에 로켓과 미사일을 사용한 무력 충돌이 일어난 지 이틀만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길 것을 공표한 뒤 새 대사관 개소를 이틀 앞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네타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렇다. ‘유로비전 노래 경연’은 63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유럽 최대의 음악 축제 가운데 하나다. 유럽방송연맹(EBU)에 속한 40여 개국의 국가대표 가수들이 각자의 노래를 들고 참여해 승부를 펼친다. 스웨덴의 팝그룹 아바(ABBA)와 당시 스위스 대표로 참가한 셀린 디옹 등이 이 대회 우승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 대회는 참가자를 호명할 때 나라와 함께 수도의 이름까지 호명하는 등 일종의 국가 대항전 성격을 띤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챔피언스리그 축구대회 수준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실제 네타의 우승이 확정되자 이스라엘 시민들이 텔아비브(이스라엘 최대 도시)의 공중 분수에 뛰어드는 등 축제 분위기가 도시를 감쌌다. 영상을 보면, 2002년의 한국 월드컵이 연상될 정도다.

Spontaneous celebrations of Netta’s Eurovision victory ★★ in Tel
Aviv. It’s 1:30 AM and for Israelis tomorrow, Sunday is a working day. And yet- the celebration is unstoppable ★★★★★★★★ pic.twitter.com/7kWTNWPZBe— Idit Rosenzweig-Abu (@iditabu) 2018년 5월 13일

준결승부터 결승까지 최대 2억 명이 시청하는 이 쇼에서 네타는 키프로스 공화국과 오스트리아 대표를 결승에서 물리치고 노래 ‘토이’로 우승을 차지한 뒤 “너무 기쁘다. ‘다름’을 선택해줘서 감사하다. 다양성을 축복해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다양성에 대한 언급은 그의 노래 ‘토이’(Toy)가 페미니즘과 미투 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토이’의 가사 중에는 “잊지 마 너는 엄청난 여자야. 그 남자는 후회할 거야”, “난 너의 장난감이 아니야 멍청한 녀석아”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노래는 경연 내내 닭울음 소리와 날개를 퍼덕거리는 듯한 춤 동작, 기모노 내지는 중국의 황실 예복과 비슷해 보이는 복장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어우러져 키치(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혼종 문화)한 균형을 잘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몇몇 심사위원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이어지는 발언이었다. 네타는 무대에서 퇴장하기 전 “감사합니다. 전 제 나라를 사랑합니다.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고 외쳤다. 유로비전의 규약을 보면, 이듬해의 유로비전은 전해 우승자의 나라 수도에서 치러진다. 결국 네타의 발언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 발언을 듣고 “최근 예루살렘은 많은 축복을 받았다”며 내각 회의에서 “어젯밤 우리는 네타의 황홀하고 격정적인 승리로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은 내년에는 유로비전이 예루살렘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이 행사를 치른다면 무척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전 세계에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수도로 알리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최고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천명한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예루살렘은 다양한 종교의 성지이기 때문에 특정한 종교를 국교로 삼은 한 나라만의 수도로 불리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은 1947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하면서 갈등이 일었다. 유럽연합의 5개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은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발하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수도여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은 나눌 수 없는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에선 유로비전 우승을 또 다른 정치적 승리로 보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욤 키푸르(속죄일)의 마지막과 유월절 기간 이후에 부르는 종교적 의미를 지닌 노래의 제목이기도 하다”라며 네타의 발언이 단순한 축하 소감이 아님을 지적했다. 이 매체는 “만약 예루살렘에서 유로비전 대회가 치러진다면 현재 미국의 예루살렘 수도 결정에 28개 유럽 국가 가운데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야망을 부추길 것”이라며 “14일에 열리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 이전식에 초대받은 86개국 대사들 중에 참석을 표한 사람은 절반도 안되고, 이 가운데 유럽 국가는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뿐”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 트위터 사용자는 네타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 사용자는 “네타는 ‘2019년엔 예루살렘’이라고 말했고, 자신의 음악이 이스라엘의 선전 음악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머리에 총을 맞는 상황에서 어떻게 유로비전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찬양할 수 있나”라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전 무역진흥 장관 조 코스텔로는 트위터를 통해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사실을 네타가 알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부에서는 네타가 정치적인 발언으로 유로비전의 규정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 이방카 트럼프와 그의 유대계 남편 제러드 쿠슈너가 참석하는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식(현지시간 14일 4시)을 앞두고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BBC의 보도를 보면, 이스라엘 정부는 해당 지역에 특수부대와 저격수 등을 배치하고 준 전시태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 3월 말부터 벌어진 국경지역 시위로 4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스라엘 쪽은 국경에 접근하는 시위대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고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박세회 기자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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