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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123년 만에 살아오는 ‘녹두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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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봉준 동상’ 24일 제막식

민초들 2억7천만원 성금 모아

처형된 서울 종각역 앞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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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4월24일 새벽 2시께였다. 여명도 비치지 않은 캄캄한 시간, ‘녹두장군’이라 불린 농민들의 영웅은 서울 한복판 형장에서 목에 밧줄이 매인 채 숨을 거둔다. 전봉준. 19세기 말 일제의 침탈과 봉건 지배에 맞서 남도에서 농민군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려다 체포된 동학농민혁명의 수장이었다.

전날인 4월23일 임시재판소에서 동료 지도자 4명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은 직후 그는 한성부 중부 서린방의 감옥 ‘전옥서’ 한 귀퉁이로 끌려나왔다.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지탱하지 못해 간수가 안다시피 해서 교수대로 데려갔다고 전해진다. 그때 ‘녹두장군’이 남긴 네구의 유언시가 지금까지 전한다. ‘때를 만나서는 하늘과 땅도 모두 힘을 합치더니/ 운이 가니 영웅도 스스로를 어찌하지 못하는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나라를 위하는 붉은 마음 누가 알아줄까’

전봉준이 처형된 전옥서 터는 오늘날 서울 종각 사거리 지하철 종각역 5·6번 출구 앞의 영풍문고 자리다. 그가 순국한 날로부터 정확히 123년째가 되는 날인 오는 24일 이 형장 터에서 전봉준 장군 동상이 시민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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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창립된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이사장 이이화)는 24일 오전 11시 영풍문고 앞에서 동상 제막식을 연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국민성금으로 모은 2억7000여만원을 들여 만든 결실이다. 동상은 원로 조각가인 김수현 충북대 명예교수가 만들었다. 화강석 좌대 위에 전봉준의 앉은 모습을 높이 1.4m의 청동상으로 형상화했다. 1895년 2월27일 서울의 일본영사관에서 조사를 받은 뒤 가마 위에 앉아 압송되던 전봉준을 찍은 일본인 기사의 유일한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동상이 들어설 구체적인 위치는 영풍문고 앞에 있는 종각역 5·6번 출구 사이 공간이다. 바로 맞은편은 조선시대 서울의 시간을 종을 쳐 알리던 보신각이다. 2015년 이곳 부근에서 농민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절명한 고 백남기 농민의 기념 부조물도 종각 부근이어서 종각 사거리 일대가 역사적 의미가 각별한 기념물 공간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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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이 최후를 마친 서울에 그를 기리는 조형물을 건립하자는 논의는 2004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출범하고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물꼬가 트였다. 특히 2016년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북 전주를 방문해 기념사업단체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서울에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수용하면서 구체적인 준비 작업이 시작됐다. 역사학자 이이화 등 여러 전문가들과 서울시가 논의를 거듭한 끝에 전봉준의 순국 터인 옛 전옥서 자리에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지난해 4월 서울시 법인으로 동상건립위원회를 설립하게 됐다. 건립위 쪽은 “동학농민군 지도자가 수감되고 처형된 곳에 들어선 전봉준 동상은 동학농민혁명의 자유·평등 정신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그 뜻을 계승하는 중요한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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