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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공연 리뷰] 갑부의 딸에게 구애하는 삼총사… 대사 없이 춤만 춰도 배꼽 잡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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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괄량이 길들이기

'너무 근엄하고 무거운 거 아냐? 대사 없이 춤만 추는데 이해가 되겠어?'

조선일보

발레‘말괄량이 길들이기’에는 예쁘고 멋진 무용수 대신 호들갑 떨고 좌충우돌하는 무용수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쉴 새 없이 빠른 장면들도 모두 철저히 계산된 동작이다. /이태훈 기자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한 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발레에 대한 이런저런 선입견을 깨끗이 지워줄 맞춤 공연이다. 쉽고 발랄하고 재미있다. 영화라면 '섹시 로맨틱 코미디' 같은 홍보 문구가 딱 어울렸을 듯하다. 원작은 '십이야' '한여름밤의 꿈' 등과 함께 셰익스피어 5대 희극으로 꼽히는 작품. 희곡의 한 줄 한 줄을 몸짓과 연기로 빈틈없이 무대에 옮겨 놓은 것처럼 이야기가 선명하다. 예쁘고 멋지게 보이는 걸 포기한 무용수들 덕에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갑부 밥티스타에겐 혼기에 이른 두 딸이 있다. 말괄량이 언니 카타리나와 내숭 덩어리 동생 비앙카. 얼른 사위를 찾고 싶은데, 먼저 보내야 할 큰딸에겐 구혼자가 없고 작은딸을 찾아오는 청년들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때 거친 총각 페트루키오가 나타나 왈가닥 카타리나의 마음을 흔든다.

비앙카에게 구애하는 세 총각이 등장하는 1막 1장부터 시끌벅적하다. 춤과 노래, 꽃과 편지로 비앙카의 마음을 얻으려 하는데, 언니 카타리나가 나타나 심술궂게 훼방을 놓는다. 이 무대에 하늘하늘 여릿여릿한 발레리나는 없다. 카타리나는 힘차게 팔다리를 휘저으며 남자들을 두들겨 패고, 남자 무용수들은 그 몸짓을 따라 몸을 내던지며 망가진다. 구애자 삼총사는 잊을 만하면 나타나 관객을 배꼽 잡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감정 표현이 중요한 드라마 발레라고 해서 화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선입견이다. 말괄량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페트루키오와 카타리나의 세 차례 파드되(2인무)는 현란한 테크닉의 진수다. 서커스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쉴 새 없이 무용수들이 들고 나며 마구 뒤엉키는 난투극도 여러 차례지만, 그 모든 것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정교하다. 매우 빠르면서도 혼돈스러운 정갈함이라고나 할까.

독일의 작은 무용단이었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세계적 명성을 안긴 드라마 발레 안무가 존 크랭코(1927~1973) 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그의 여러 안무작 중에서도 원작을 가장 극적으로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라마 발레는 무용수가 해석하고 표현할 수 있는 폭이 넓다. 주역인 카타리나·페트루키오 커플을 맡은 국립발레단 최고 무용수 김지영·이재우, 박슬기·김기완, 신승원·이동훈이 어떻게 서로 다른 해석을 보여줄지도 관람 포인트다. 공연은 22일까지.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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