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가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은 날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온 것인지 휴대전화를 확인하자”고 했다. 이것을 거절하니 손을 물어뜯고, 기절할 때까지 구타했다. 최씨가 정신을 차려보니 고속도로 갓길이었다. 남자친구가 기절한 최씨를 차량 밖으로 내던지고 가버린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데이트 폭력 피의자 검거 인원은 8367명이다. 일평균 23명이 데이트폭력을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일러스트=정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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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 데이트 폭력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가 8367명에 달한다. 최근 5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만 233명.
폭력적인 연인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세 가지 행태가 반복되면 ‘데이트 폭력’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① “OOO은 만나지 마”
이성과의 만남을 과도하게 경계하는 연인(戀人)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정도가 심한 경우 동성 친구와의 만남도 제한한다. 남자친구에게 수시로 데이트 폭력을 당한 A씨가 그런 경우다. 처음에는 이성 친구를 만나지 말라더니, 동성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인증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는 나중에는 “가족여행도 가지 말라”고도 했다.
휴대전화나 소셜미디어(SNS)를 감시하는 행동은 연인을 ‘소유물’로 보는 행동이다. 서경현 삼육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사생활을 통제하고 복종을 강요하는 행동은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올인(다 걸기)’하는 자신의 연애 방식을 상대방도 수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②갑작스러운 분노 폭발
데이트 폭력 피해자 B씨(21)의 남자친구는 감정 기복이 심했다. 좋을 때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러나 수가 틀리면 180도로 달라졌다. 물건을 부수거나 깜짝 놀랄 정도로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주먹을 B씨에게 겨냥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인이 받을 때까지 전화하는 행위도 ‘위험신호’다. C씨(29)는 휴대전화가 꺼졌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에게 구타당했다. “교제 초반에도 하루에 스무통 씩은 전화했는데 그때는 몰랐죠. 이 남자의 ‘애정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지….” C씨 얘기다.
이런 공격성이 연인에 대한 폭력으로 연장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은 연인을 수직적 관계로 생각한다”며 “본인 뜻대로 안 따르면 ‘체면이 상했다’는 생각에 분노를 터뜨리고 이것은 폭력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③헤어지자는 말에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헤어지자는 통보에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데이트 폭력 위험군(群)이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데이트 폭력범(犯)은 대체로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편”이라며 “연인을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별’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대학교 커플이었던 CD씨(23)는 이별한 남자친구가 자살시도 사진을 전송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다시 만나자”고 했고, 재결합 이후 D씨를 수시로 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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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늪… “차차 고쳐지겠지” 생각이 가장 위험해
데이트 폭력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데이트 폭력 징후가 보일 때면 즉시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족, 지인, 경찰 기관 등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려야 가해자가 공격적인 행위를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도가 심하면 과감히 이별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귀다 보면 고쳐지겠지”하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데이트폭력은 ‘폭력의 늪’이라고 불릴 만큼 재발률이 높기 때문이다. 치안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가해자의 20.4%가 1년 이내 재범(再犯)을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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