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팔라우, 반중 휩스 대통령 연임 성공
“관광객 100만명 몰아준다며 대만 단교 요구
거부하자 단체 관광 줄이는 걸로 보복 나서”
수랑겔 휩스 주니어 팔라우 대통령이 11월19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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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이 있었던 지난 11월5일, 필리핀 동쪽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에서도 중국을 긴장하게 한 대선이 있었어요. 반중노선을 고수해온 수랑겔 휩스 주니어 현 대통령의 연임을 결정하는 선거였는데, 결과는 휩스 대통령의 압승이었습니다.
중국은 지난 수년간 경제 지원을 무기로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남태평양 섬나라를 공략해왔죠. 2009년 솔로몬 제도와 키리바시에 이어 올 1월 나우루가 대만에 등을 돌리고 중국과 수교했습니다. 하지만 팔라우는 대만 단교를 단호하게 거부했어요.
중국은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팔라우를 흔들기 위해 중국인 단체 관광을 금지하고, 현지 언론을 통해 친중 여론 조성에 나서는 등으로 압박했지만 팔라우를 굴복시키지 못했습니다. 팔라우는 오히려 중국을 오가는 자국 항공편 운항을 중단하는 것으로 맞불을 놨어요.
◇57.5% 지지율로 당선...친중 후보는 입후보도 못 해
이번 대선은 휩스 대통령과 토마스 레멩게사우 전 대통령의 2파전으로 전개됐습니다. 친중 성향의 신문 경영인 모제스 울루둥은 대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지지율이 낮아 입후보조차 못 했어요. 휩스 대통령이 57.5%의 득표율로 레멩게사우 전 대통령(41.3%)을 이기고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휩스 대통령은 대선을 전후해 중국을 강도 높게 공격했어요. 지난 9월 외신 인터뷰에서 “2020년 대선 직전 미크로네시아 연방 주재 중국 대사가 전화를 걸어와 한해 100만명의 관광객을 보내줄 테니 대만과 단교하라고 요구했다”면서 “이 요구를 거부하자 중국인 관광객을 줄였다”고 폭로했습니다.
대선 승리 후 AFP 인터뷰에서는 “중국 해양조사선이 최근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침범했다”면서 “깃발을 올려 경고해도 우리의 주권과 경계선을 무시했다”고 주장했어요. 팔라우 해저 산맥 두 곳에 중국식 이름을 붙인 사실도 공개하면서 “무슨 의도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은 외교부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이 나서서 “팔라우가 유엔 결의를 어기고 대만과 수교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반격했습니다. 하지만 인구 14억명의 나라가 2만명도 안 되는 섬나라의 거센 국제 여론전에 허둥대는 모습이었어요.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1994년 독립한 인구 1만8000명 소국
팔라우는 필리핀에서 동쪽으로 850km 떨어진 섬나라입니다. 340개 섬으로 구성돼 있는데, 전체 면적은 459㎢로 서울보다 작아요. 1947년 미국이 통치하는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의 일부로 들어갔다가 1981년 자치령이 됐고, 1994년 공화국으로 독립했습니다.
미국과는 자유연합협정(COFA)을 체결하고 있죠. 미군이 팔라우 안보를 지키면서 영공과 영해, 영토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대가로 매년 5000만 달러 전후의 재정을 지원합니다.
팔라우는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관광업에 의존해요. 천혜의 해저 환경을 갖고 있어 스노클링, 다이빙의 성지로 꼽힙니다. 그전에는 일본인, 대만인 관광객이 다수였지만 2008년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2015년에는 그 숫자가 9만1000명까지 치솟아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중국 부동산 개발업자들도 몰려와 호텔 등을 지었다고 해요.
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 /팔라우관광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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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단교 거부하자 단체관광 금지령
팔라우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자 중국은 레멩게사우 대통령 재임기부터 대만과 단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레멩게사우 대통령은 “팔라우의 민주주의적 이상은 대만과 더 가깝다”며 거부했다고 해요.
그러자 2017년 팔라우 단체 관광을 금지하는 등 압박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사드 배치를 이유로 우리나라에 대한 단체 관광을 제한한 것과 비슷한 시기였죠. 2017년 팔라우 방문 중국 관광객은 5만5000명으로 감소했고, 2020년에는 3300명까지 줄었습니다. 2018년에는 팔라우 일간지 티아 벨라우와 합작으로 미디어 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이 프로젝트 뒤에는 중국군과 공안이 있었다고 해요.
중국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휩스 대통령을 떨어뜨리기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작년 12월 중국 마약 밀매단이 연루된 중국인 간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건을 빌미로 지난 6월 팔라우 여행 안전 주의보를 내렸어요. 올 3월에는 팔라우 정부 전산망 해킹사건이 일어나 정부 문서 2만건을 도난당했는데, 팔라우 정부는 중국을 이 사건의 배후로 봅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
◇중국 압박 맞서 미군 기지 유치
팔라우는 소국이지만 외교·안보 문제는 단호하게 대응해요. 2012년 중국 어선이 자국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자 해양경찰이 총을 쏴 중국 어민 1명이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2020년12월에는 불법으로 해삼을 잡던 중국 어선 1척과 선원 28명을 나포했어요. 조업용 소형 보트 6척과 어구 등을 압수하고 수확한 해삼을 모두 바다에 버리게 한 뒤 쫓아냈습니다.
중국의 압박에 맞서 미군 기지 유치에도 적극적이에요. 레멩게사우는 2020년 대통령 재임 당시 미국에 팔라우 내 군사기지 건설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2차대전 격전지인 팔라우 펠렐리우섬의 낡은 활주로를 보수하고 해군 군함이 들어올 수 있게 항구도 정비 중이에요. 장거리 레이더 기지도 구축 중입니다. 팔라우는 중국의 공세에 따른 안보 불안을 해결하고, 미국은 대만해협 유사시에 대비해 후방에 해·공군 기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거죠. 휩스 대통령도 “주둔이 곧 억지력(Presence is deterrence)”이라며 미군 주둔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미 해병대 소속 KC-130J 수송기가 지난 7월 2차대전 격전지였던 팔라우 펠릴리우섬의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미군은 이곳을 공군기지로 전환하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미 국방부 DVI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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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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