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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금수저 싱글 2억 빌려 내집마련…흙수저 맞벌이는 돈줄 꽉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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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인드 대한민국 ④ / 더 깜깜해진 내집 꿈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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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12년 차 공무원 김 모씨(37). 직장에선 전문성과 꼼꼼한 업무능력으로 인정받는 관료지만 두 자녀의 아빠이자 워킹맘의 남편으로서 김씨는 무력할 때가 많다. 김씨는 무주택자이고 앞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공급이나 금리처럼 안 그래도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변수들이 많은데 은행 건전성 지표인 LTV(Loan to Value·집값 대비 대출 한도)나 가계 건전성 지표인 DTI(Debt to Income·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한도)를 조였다 풀었다 하면서 갚을 수 있는 빚조차 빌릴 수 없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무원인 김씨 동료들이 참을 수 없는 대목은 보유세를 둘러싼 새 정부의 공포정치다. 김씨는 "'집값이 더 오르면 보유세 인상 카드도 주저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발언은 냉·온탕을 반복하며 국민을 겁박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인 나조차 내 집 마련을 위한 정책 향배가 안 보이는데 일반 국민은 오죽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자신이 흙수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6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1년에 최소 2000만원을 저축했다. 2011년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해 신혼살림을 꾸릴 때 부부가 손에 쥔 돈은 1억3000만원.

전세자금 3000만원을 빌려 서울 동작구에 56㎡(약 17평·전용면적=공급면적)짜리 빌라 전세를 구했다. 2년 새 전세금이 올라 월세 10만원을 더 주기로 집주인과 합의할 때까지만 해도 '조금만 더 모으면 집을 살 수 있겠지' 싶었다. 김씨 부부가 내 집 마련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은 2014년 7월 첫째 출산을 앞두면서다. 같은 달 24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른바 '초이노믹스'라는 별명이 붙은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집값 70%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5%였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초이노믹스 직후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2015년 5월 1억원을 빌려 전세 3억6000만원짜리 83㎡(약 25평) 종로구 빌라로 이사했다. 첫째는 돌을 앞두고 있었고 아내의 육아휴직은 끝나갔다. 둘 다 지방 출신인 김씨 부부에게는 '장모님 찬스'나 '시어머니 찬스' 같은 게 없었다. 다행히 중앙부처 공무원인 김씨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었다(김씨 사무실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LTV 70%에 신용대출까지,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살 수 있는 서울 아파트는 지방 출신 워킹파파·워킹맘인 김씨 부부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올해 초 눈을 감았다 뜨니 6억원이던 아파트는 8억원이 돼 있었고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문재인 후보는 집값을 잡겠다고 공약했다. 김씨 부부는 금수저·은수저보다 흙수저·무수저를 위한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로 문 후보를 찍었다. 지난 5월 둘째가 태어났고 문 후보는 대통령에 취임했다. 정부가 시켜서 낳은 것은 아니지만 두 자녀를 낳아 기르며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3억6000만원이었던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있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다시 오를 것이며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김씨는 금리가 연 2%대 후반으로 30년 내내 고정되는 디딤돌대출이나 보금자리론을 받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면 70%인 3억5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줄 알았더니 디딤돌대출은 대출이 2억원밖에 안 됐다. 금리가 조금 더 높지만 대출이 3억원까지 되는 보금자리론은 부부 연소득이 7000만원 이하로 제한돼 있었다. 맞벌이로 이 금액을 겨우 조금 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외벌이인 금수저 후배가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3억원을 지원받고 디딤돌대출 2억원을 받는 것을 보며 김씨는 "디딤돌대출인지 사다리 걷어차기 대출인지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 월세를 더 올려주기로 하고 계약을 갱신한 김씨는 6·19 대책과 8·2 대책 등 잇단 부동산 대책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LTV가 새 정부 출범한 지 한 달도 채 안 돼 70%에서 60%로 내려가더니 "그래도 집값이 안 떨어진다"며 지난 8월부터 이 비율은 40%까지 떨어졌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에 근무하는 동료 공무원들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합산 연봉이 8000만원을 겨우 넘는 김씨 부부는 LTV를 50%까지 높여주는 서민·실수요자(부부 합산 연봉 8000만원 이하인 생애최초주택구입자)가 아니었다. 김씨가 일부 아는 공무원에게 물어봤더니 "위에서 시켜서 했고 자기 생각은 이게 아니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천시나 고양시, 성남시 분당구가 아닌 경기도 지역에서는 70% LTV를 적용받을 수 있지만 김씨 부부는 어린이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대책이 나오고 4개월. 잡겠다던 집값은 잡히지 않았다. 정부청사에서 20~30분 거리 아파트 단지는 1년도 채 안 돼 2억원이나 올랐다.

김씨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부동산 가격은 실수요 목적으로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사람들이 형성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됐다"며 "왜 정부 정책은 실수요자 대출 고삐를 죄는 방식으로 추진되는지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 임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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