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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부모가 잔소리가 멈추는 공간, 피드백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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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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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무언가 빠졌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평상시 자주 가는 단골집의 설렁탕 국물이 오늘따라 뭔가 허전하단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음식의 어떤 재료가 바뀌었거나 아예 빠진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요. 오랜 만에 찾아온 긴 연휴에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공항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계속 허전하단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행 가방 안에 무엇인가 빼 놓고 오는 물건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아 마음 한 켠이 계속 불안했던 경험들처럼 말이지요.

저도 딸아이와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무엇인가 빠진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10개월 정도를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 드러커 교수의 피드백 분석을 읽게 되었고 그 순간 제 뇌는 소리 없는 함성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피드백 분석이야말로 딸아이의 성장을 도와 줄 꺼야~!'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 교수는 피드백 분석이란 본인이 예상하는 결과를 미리 기록해 두고 일정 기간 후 자신이 기대한 바와 실제 결과를 비교해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드러커 피드백 수첩』(이사카 다카시 지음)에 따르면, ‘필요한 것은 단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습관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찰하는 습관이 형성되려면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피드백 분석을 창안해 내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은 바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던 엘자(Miss Elsa)였습니다. 그녀는 드러커의 작문 실력을 보고 어떻게 하면 아이의 강점을 더 향상시켜 줄까를 고민했지요. 그리고 두 권의 노트를 준비한 다음 한 권은 드러커에게 주면서 노트에 일주일 동안의 성과와 다음 주 목표를 쓰도록 했지요.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의 노트에는 그녀가 드러커의 노트를 읽고 난 뒤 느낀 점과 기대 사항을 적어서 드러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드러커는 이렇게 매주 노트에 목표와 성과를 적고 선생님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개선하려고 더 노력을 하게 되었지요. 결국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피드백 분석을 창안해 냈고 평생 동안 직접 피드백 분석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반면, 저는 이제까지 딸아이에게 습관을 실천하라고만 알려주었지 올바른 피드백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필요성도 알지 못했고 방법도 알지 못했지요. 그러나 피드백 분석을 알게 된 지금 바로 피드백 노트를 만들고 딸아이의 일주일 동안의 습관 실천 결과와 다음 주 습관 계획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게 된다면, 딸아이의 성장에 커다란 디딤돌이 될 것이란 확신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피드백 노트에는 아빠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딸의 성공 기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기 때문에, 딸아이가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피드백 노트를 펼쳐 보게 되면, 다시 도전할 용기를 부활시켜 주는 마법의 노트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들떠 있었습니다.

한가지 고백하자면, 제 입장에서는 생각날 때마다 딸의 습관 실천 결과에 대하여 말로는 피드백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입장에선 잔소리처럼 들렸나 봅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제 피드백은 생각의 정리가 안된 말로 공감과 칭찬은 건너뛰고 딸의 잘못과 제 희망 사항만 속사포처럼 지껄였기 때문입니다. 말로 피드백을 전달하려고 시도했더니 딸아이도 딴짓을 하며 주의 깊게 듣지를 않았지요. 피드백이라고 명명하기도 부끄러운 허울뿐인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주먹 하나 들어 가기도 힘든 작은 쥐구멍에라도 자신의 거대한 몸을 숨기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피터 드러커 교수의 피드백 분석을 알게 된 후, 피드백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전달하는 방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마치 이삿짐을 포장할 때 깨지기 쉬운 사기 그릇이나 유리 제품은 더 정성 들여 신문지나 충격 완충제로 제품을 포장해야 배달 과정에서 깨지지 않듯이, 피드백도 자신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진심이 제대로 포장되지 않으면 둘의 관계만 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잔소리처럼 들리는 말보다는, 글로 적어 피드백을 딸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며칠 뒤, 저는 노트를 한 권 구입한 다음, 노트 맨 상단에 ‘아빠의 생각’이라고 제목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제 진심이 담긴 조언과 기대사항을 노트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피드백을 말 대신 글로 적어 전달할 경우의 장점 중 하나는 딸아이가 아무 때나 기분이 내킬 때 제 피드백 노트를 펼쳐 볼 자유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아래 사진은 '아이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 38주차 습관 실천 결과에 대한 ‘아빠의 생각’이란 피드백 노트입니다.

매일경제

'아빠의 생각' 이란 피드백 노트의 특징 중 하나는 아빠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공간과 딸의 생각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노트의 상단 부분은 아빠의 생각을 먼저 적고 맨 마지막 하단부에 딸의 생각을 적도록 빈 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피드백 노트도 아빠와 딸의 소중한 의사소통 채널이기 때문에 아빠의 생각에 대하여 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 3주 동안은 피드백 노트 어디에도 딸의 생각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었지요. 실망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의 생각' 피드백 노트를 시작한지 4주 만에, 노트에 달랑 두 줄이지만 드디어 딸의 생각이 처음으로 출몰했습니다. 딸의 생각은 제가 피드백 노트에 적은 내용 중 두 번째 피드백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글로 적은 것입니다. 우선 제가 적어 놓았던 두 번째 피드백 내용을 먼저 살펴 볼까요?

2. 무엇보다도, 아빠는 노트 선생님(노트샘)이 단어(7개, 4월)를 찾고 뜻을 적는 것이 많이 귀찮고 힘든데도 실천해 주어서 고마웠어. 그리고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잖아. 4월 달까지는 아빠랑 같이 새로운 단어의 사전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아빠는 무척 기뻤어. 다음에도 아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해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야.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보다 수천 배 값진 행동이야.

제 피드백에 대하여 딸아이가 ‘은율 생각은?’ 이라고 빈칸으로 남겨 놓은 공간에 본인의 생각을 적어 놓았습니다.

“나도 시간의 맞춰 미루지 않고 노트샘 잘해보도록 노력할께~ 또 아빠 덕분의 습관을

좀 더 알 수 있었어. 고마워~ 그 요청 꼭 필요할 때만 요청할게~”


갓 입대한 신병이 여자 친구에게 첫 편지를 받은 순간처럼 얼마나 설레고 기뻤던지 읽고 또 읽었지요. 맞춤법이 틀린 곳도 몇 군데 있었지만, 딸이 아빠에게 멋지게 피드백 한방을 날렸습니다. 뭉클했지요. 무엇보다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 조금씩 변하고 있구나 그리고 이제는 아빠를 믿기 시작했구나'

딸이 밀고 당기기의 고수처럼 전략적으로 뜸을 들인 다음 아빠에게 피드백을 늦게 전달한 것 아니야라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했었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사실은 딸에게 피드백을 전달한 사람은 저인데, 도리어 제가 딸의 피드백을 받고 위로와 감동을 느꼈다는 점입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열정과 노력만으로 성과가 비례하여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만 하면 성공의 열매를 수확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로봇과 함께 경쟁하며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창의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올바른 방향 설정이 안된 아이의 노력은 과녁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과녁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 어느 지점에 노력의 화살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매일 올바른 방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자신의 강점과 독창성을 키워 나가도록 누군가는 옆에서 피드백을 통해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엘자 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우리 곁을 떠나 가신지 오래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엘자 선생님으로부터 피드백 분석의 정수를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제 2의 엘자 선생님이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누가 제 2의 엘자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엄마 아빠가 가장 현실적인 대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의 피드백은 아이를 향한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피드백은 아이가 강점에 집중하도록 끊임없이 방향성을 제시해 줄 뿐만 아니라, 아이가 믿고 의지하며 자존감을 키워 갈 수 있기 때문에 훌륭한 제 2의 엘자 선생님이라고 믿습니다.

[이범용 삼성SDI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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