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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민중의 X팡이" "인권委 갈래?"… 경찰을 모멸해도 멀쩡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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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의 수난] [1] 폭언·폭행 시달리는 경찰

- 과잉진압이라는 족쇄

난동자들 제압하려 테이저건 쏘니 인터넷엔 되레 경찰이 가해자로

- 피의자에 '인권만족도' 조사

서울경찰청 지난 9월부터 문자·카카오톡으로 사후 조사…

경찰관들 "이제 우린 서비스업"

- 공무원 폭행·협박, 實刑 11%뿐

법조문엔 5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

실제로는 작년 1심 1만743명 중 집유 5607명, 벌금형 3512명

2012년부터 작년까지 공무 집행 방해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7만2807명. 평균 36분마다 경찰과 소방관, 주차 단속원, 세금 징수원 등이 공무 수행 중 범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복 공무원(MIU· Men In Uniform)'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제복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공권력 남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현장 공무원은 더 위축된다. 선량한 시민의 인권·권리 보호를 위해선 제복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복 공무원이 위협받는 현장을 연속해서 점검한다.

지난 11일 새벽 서울 마포구의 한 횟집.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출동한 경찰을 향해 소리치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 파출소로 연행된 후에는 소변을 봤다. 뒤처리는 경찰 몫이다. 취객이 많이 잡혀 오는 이 파출소에는 대걸레가 여러 개 있다. 한 경찰은 "난동 부리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주폭(酒暴·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문제만이 아니다. 지난달 10일 부산 영도구의 한 파출소를 찾은 40대 남성은 한 여경에게 "내 눈에 보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시내에서 무단 횡단을 하다 잡혀 온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놔두고 나만 잡느냐"며 화를 냈다. 한 경찰관은 "이런 사람을 협박이나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입건하면 하루에 10명은 더 잡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몸이 떨릴 만큼 분한데 참는다"고 했다.

지난해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에 입건된 사람은 1만5313명. 신고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짐작조차 어렵다. 공무집행방해죄를 엄하게 다루지 않는 것도 제복을 경시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공무원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최근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여전히 적은 편이다. 작년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공무 집행 방해로 1심 판결을 받은 1만743명 중 징역형(실형)을 선고받은 수는 1212명(약 11%)에 불과하다. 대부분 집행유예(5607명)나 벌금형(3512명)에 그친다.

매 맞는 경찰

지난 9월 서울에선 한 경찰이 중앙선 침범을 한 차량을 적발했다. 운전자는 술까지 마셨다. 음주 측정을 거부한 운전자는 경찰을 매달고 30m나 더 달렸다가 붙잡혔다. 경찰은 차에서 떨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보통 이런 사건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이번에 경찰은 사건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폭행당하는 경찰 이미지가 부담스럽고 일선 경찰관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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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사회 질서를 담당하는 대표적인 '제복 공무원'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전북 전주에선 만취한 취객이 경찰을 때려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일이 있었다. 경찰들은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맞고 나면 출동 때 겁이 난다"고 했다.

폭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쉽지 않다. 지난 5월 새벽 경기 오산시의 한 공원에서 술 먹고 난동을 부리던 10대 청소년 18명을 제압하기 위해 경찰이 테이저건을 쐈다. 그중 한 명이 이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화면 속엔 테이저건에 맞아 울부짖는 학생만 있었다. 그전에 학생들이 경찰의 멱살을 잡는 모습은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았다. 경찰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과잉 진압 논란이 일었다. 해당 경찰은 상부에 전후 사정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보복성 민원에 시달려

최근 일선 경찰들은 "국민신문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하겠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범법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히면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는 소리가 돌아온다. 상부에 민원이 들어가는 것을 경찰들이 꺼린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먼저 반말로 대답하거나 욕설을 해놓고 형사나 수사관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 "왜 피의자한테 함부로 하느냐. 어디다 민원 넣으면 되느냐"고 약을 올린다고 한다.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경우도 많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당장 찾아 달라" "강아지를 누가 훔쳐간 것 같다"는 신고를 한 후 "당장 처리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또 피의자들이 "졸려서 조사를 못 받겠다"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경찰들은 마치 조롱을 당하는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느라 정작 중요한 사건에 집중 못한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마냥 무시할 수 없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9월부터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을 상대로 문자나 카카오톡을 이용해 '모바일 인권 만족도' 설문조사를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설문 내용은 해당 부서에 공유되고 추후 경찰서별 치안 종합성 평가에 반영된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일선 경찰에선 "수사는 뒷전이고, 민원인·피의자 뒤치다꺼리만 한다. 경찰 업무가 서비스업이냐"는 불만이 나온다.

고발을 당해 개인 돈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객을 제압하다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 등이다. 이렇게 검거 과정에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신고 당하는 경찰이 매년 1100명 정도 된다.

경찰엔 소송지원단과 법률지원금 제도가 있다. 소송이나 법적 분쟁을 겪는 경찰관을 위해서다. 하지만 지원액 상한(최대 1500만원)에 한계가 있고 요건이 까다로워 일선 경찰관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집행유예나 100만~500만원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막상 경찰이 고발당하면 별다른 지원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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