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규제의 덫인가, 기형적 지배구조 제동장치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키뉴스 정명섭 기자] 케이뱅크에 이어 카카오뱅크가 출범 초반 돌풍을 일으키면서 금융권의 건강한 경쟁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뱅크는 지난달 말 문을 연 이후 2주 만에 200만 계좌 개설, 수신 9960억원, 여신 7700억원을 넘어서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성장의 필수 과제로 손꼽히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여당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연내에도 관련 법안 처리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 국회서 연내 처리 불투명

24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9월 정기국회에서 은산분리 규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긴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은산분리 규제 유지를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최근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서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책을 포함하지 않으면서 이같은 기조가 현재까지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 재확인됐다.

또한 관련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이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만을 위한 규제 완화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난제다.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반대가 당론이었고, 20대 국회 들어서도 반대 의견이 더 우세하다.

업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 의원들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 입장이라서 연내 법안 처리는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무위원회에는 인터넷전문은행 관련 5개의 법안이 계류돼 있다. 3개 법안은 비금융주력자가 보유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의결권 주식을 50%로 확대하는 안이며, 나머지 2개는 해당 비율을 34%까지 늘리도록 했다.

키뉴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성장의 필수 과제로 손꼽히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현 정부와 여당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연내에도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픽사베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해외는 어떻게 규제하나

우리나라의 은산분리 규제는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을 최대 10%만 보유할 수 있고, 이 중 4%만 의결권을 행사토록 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아닌 기업이 은행업을 영위하는데 비교적 강도 높은 제한을 두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제도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들은 대체로 은산분리 기조를 유지하지만 조건부로 규제를 완화해주고 있다. 1995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전문은행 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다소 규제가 완화된 은산분리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을 기본 골자로 산업자본이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금융사가 아닌 기업이 은행업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다만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한 회사가 은행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을 25% 미만까지 보유할 수 있다. 이 또한 미국 정부는 해당 회사가 은행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지 혹은 임원 선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제재를 가할 수 있다.

이탈리아와 호주, 캐나다 등에서도 은산분리 규제는 유지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비금융회사가 은행지분 5%를 초과하거나 은행을 지배하는 경우 중앙은행의 승인이 필요하다. 특히 주주의 기업부문 비중이 금융부문보다 높으면 은행지분의 15%를 초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는 비금융회사의 은행지분 보유 한도를 10%로 제한했으나 2001년에 이 규제를 소폭 완화해 은행자기자본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있다. 현재 은행 자기자본이 50억 달러를 초과하면 은행지분소유 한도는 의결권 있는 주식의 20% 이내로 제한, 10억 달러 이하이면 지분소유 제한이 없다.

호주도 은행뿐 아니라 제2금융권 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소유한도를 15%로 제한하고 있다. 이를 초과할 경우 재무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외에도 EU 국가들은 비금융회사가 은행 주식의 일정 비율 이상을 소유할 경우 감독기관에 보고하고, 적격성 심사를 받도록 했다.

반면 일본은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이 허용된다. 일본은 2000년부터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했는데 2011년까지 총 6곳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됐다. 이 중 지분 뱅크는 통신사업자가 5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라쿠텐 뱅크는 비금융비은행 회사가 설립주체다.

한국 특유의 '재벌' 기업문화 먼저 개편돼야

주요 선진국은 은산분리 규제를 우리나라 만큼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국가들의 사례를 참고해 국내에서도 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 특유의 재벌 기업문화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현재에도 재벌 기업에 속한 금융 회사가 여러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에 사용되고 있다.

2011년 상호저축은행들의 대규모 파산 사태는 이들 저축은행의 대주주가 차명 거래로 법망을 회피해 부실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3년에도 동양증권이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부실 금융상품을 판매했고,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입은 바 있다.

이에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외치기 전에 이같은 기형적인 기업 지배 구조를 투명화 하는게 우선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기업들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할 가능성이 사라질 정도로 기업경영환경이 투명하고 성숙해질 때까지는 은사분리 원칙 완화 논의 자체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Copyright ⓒ 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