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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66년 가야금 인생, 歌曲으로 풀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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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9일 가곡 콘서트 여는 황병기

'미궁'부터 신작 '광화문'까지

"저는 원래 가야금을 필생의 업(業)으로 삼았어요. 하지만 가곡도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가야금 곡 못잖게 가곡도 많이 작곡했지요. 그중에서도 1975년에 쓴 '미궁(迷宮)'이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누구든 저를 처음 만나면 '미궁'부터 물어본단 말이지요. 그래서 정했어요. 42년 전 발표한 '미궁'부터 금년에 새로 쓴 '광화문'까지 들려드리기로."

가야금 명인 황병기(81)가 다음 달 9일 오후 4시 인천 엘림아트센터 엘림홀에서 가야금 인생 66주년, 창작 인생 55주년을 기념하는 가곡(歌曲) 콘서트 '황병기 가곡의 밤'을 연다. 대표작인 '미궁'과 '즐거운 편지' '우리는 하나' '차향이제' '추천사'와 더불어 신작 '광화문(光化門)'을 선보인다.

조선일보

서울 창덕궁 낙선재에서 연주하는 황병기.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꾸준히 가야금을 뜯는‘현역’이다. /김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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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과 삼각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 어느 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고 노래하는 '광화문'은 미당 서정주가 1959년에 쓴 동명의 시에 그가 선율을 붙인 가곡. 흔히 가곡이라면 시에 노래를 붙인 서양 가곡을 떠올리지만, 가사·시조와 더불어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선비들만 부르던 고급 '노래'를 칭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17일 전화 통화에서 황 명인은 "우리 민족 전체의 광명과 평화를 내포하고 있는 시여서 오래전부터 곡을 붙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라며 "내 생애 첫 곡도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에 곡을 붙인 가곡이었다"고 했다. 전통 정가(正歌) 어법으로 노래하는 '광화문'은 정가 명인 박문규가 부른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다 2001년 정년퇴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을 지낸 황 명인은 우리 창작음악의 1세대. 1974년 유럽 공연을 앞두고 신라 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유리그릇에서 영감을 얻은 '비단길' 등 반세기 넘는 인생에서 나온 작품들은 전통을 품으면서도 독창적이어서 널리 연주된다.

3년 전 '정남희제(制) 황병기류(流) 가야금 산조' 음반을 냈을 만큼 연주 활동도 활발히 이어오고 있는 그는 이번에 가야금으로 '미궁'을 연주한다. 18분 길이의 미궁은 가야금 소리에 울고 웃는 사람의 목청이 섞여 있어 실제 공연장에서 여성 관객이 실신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미궁을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괴담도 떠돌았다. 황 명인은 첼로 활과 장구채, 거문고 술대 등을 사용해 가야금 열두 줄을 튕기고 긁고 누른다. 소프라노 윤인숙이 비성악적인 우는 소리, 신음하는 소리, 신문 낭독하는 소리 등을 내어 극적 효과를 살린다.

그는 "예술의 본질은 슬픔"이라고 했다. "한(恨)을 집어먹고 나오는 환희 말이에요. 그래서 제 곡은 어떤 곡이든 모두 슬픔이 들어 있지요.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도 제목은 즐겁다 하지만 내용은 뼈가 저리게 슬프잖아요. 그게 멋있습니다." (02)583-4300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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