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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신체에서 자신 있는 부분을 과장해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커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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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unway_ 거부할 수 없는 과장의 유혹

과장은 '사실보다 지나치게 불려서 나타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패션적 측면에서의 과장은 실루엣의 과장이 대부분으로 어깨와 엉덩이를 부풀리고, 허리를 가늘게 조이는 식이다. 때로는 신분을 상징하기 위해, 때로는 개성을 표출하기 위해 과장된 실루엣을 사용한다.

조선일보

Getty Images Bank


과장된 실루엣의 역사는 길다. 15세기 스페인의 귀족 여성들은 고래수염, 철사 등으로 둥글고 큰 고리 형태로 만든 파딩게일을 착용했다. 속치마의 일종인 파딩게일은 스커트를 부풀려 모래시계형 실루엣을 자아내기 위해 쓰였다. 곧 프랑스와 영국으로도 유행이 번졌고 엘리자베스 1세 역시 파딩게일을 입었다. 러프 칼라도 유행했다. 주름을 잡아 겹겹이 올려 만든 과장된 크기의 칼라는 권위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목을 강조해 목 바로 위의 머리를 소중하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했다고 한다. 거대한 칼라 사이즈 때문에 손을 입 가까이에 가져갈 수 없어 스푼 길이가 50cm는 되어야 수프를 먹을 수 있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로부터 200년 후 로코코 시대에는 헤어스타일까지 거대해졌다. 퐁탕주라 불린 헤어는 기름과 파우더, 쿠션 등으로 크게는 1m까지 쌓아 올린 후 각종 장식을 얹는 것이었다. 프랑스 귀부인들은 퐁탕주 무게 때문에 두통과 디스크에 시달렸다.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스타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과장된 복식이 귀족 신분임을 암시해주었기 때문이다.

현대의 패션이 보여주는 과장은 외형적으로는 어느 정도 과거와 유사하지만 목적은 과거와 다르다. 꼼데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는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주제를 '실루엣의 미래'로 내걸었다. 스펀지와 종이 포장지, 실버 컬러의 필름 등 파격적인 소재를 사용했다. 모델이 입고 있지 않았으면 옷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과장되고 독특한 형태다. 디자이너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과장이다. 준 다카하시가 언더커버 컬렉션에서 선보인 거대한 플라워 프린트 볼레로,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에서 내놓은 풍성한 실루엣의 스트라이프 재킷 등은 펑크 무드의 스트리트 스타일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이다.

좀 더 우아한 버전의 과장도 있다. 로베르토 카발리의 컬렉션에는 화이트 컬러의 몽글몽글한 니트에 퍼를 매치해 풍성한 볼륨의 볼레로가 등장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영감을 받은 로렌조 세라피니의 컬렉션에는 허리를 가늘게 조이고 발목 길이의 스커트를 파딩게일을 입은 것처럼 풍성하게 만든 모래시계형 실루엣의 룩이 등장했다. 원반을 반으로 잘라 어깨에 얹은 듯한 자크무스의 도트 블라우스와 그레이 컬러 파워숄더 재킷 역시 과장된 실루엣이지만 우아한 무드를 잃지 않는다.

체형이나 취향에 따라 신체에서 자신 있는 부분을 과장해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장점을 부각시키고 단점을 커버해준다. 어깨를 강조하면 얼굴이 작아 보이고, 엉덩이를 강조하면 허리가 날씬해 보이는 식이다. 과거의 과장이 권위와 지위의 상징이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지금의 과장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선택이다.



[양윤경 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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