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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카이스트 출신 대기업 과장,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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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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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많이 하고, 남을 헐뜯은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착하고 순한 사람… 그런 사람이 당합니다.”

지난 17일 숨진 삼성중공업 관리직 이모 과장을 떠올리며 그의 전·현 동료들과 유가족들이 한 말이다.

올해 서른아홉이던 이 과장은 아내와 두달된 딸, 부모님을 남긴 채 경남 거제시의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이 과장의 유가족들과 전·현 동료들은 그의 등을 떠민 것은 회사의 ‘반강제적’ 희망퇴직과 그에 따른 업무 압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장은 카이스트(KAIST)에서 학부를, 일본 도쿄대에서 석사를 졸업한 뒤 대기업인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던 연구원이었다. 박사과정에도 뜻이 있었지만 가정 형편 탓에 취업을 택한 그는 회사에서 “조용히, 제 할일 열심히 찾아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했다고 유가족과 동료들은 증언했다.

그러던 그의 신상에 지난 3월 변화가 생겼다. 그는 약 6년간의 연구원 생활을 그만두고 관리부서로 옮겼다. 조선업 경기가 침체된 탓에 연구직 인력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연구원들 사이에서 알려졌다. 그 때쯤 회사는 선주와 선박 건조 현장 사이를 조율하는 중간관리 조직을 하나 꾸린다고 했다. 이 과장은 그 때 손을 들었다고 한다. 20명이 채 안되는 인원으로 꾸려진 새 팀은 40명 규모까지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나 새 팀에서의 업무는 쉽지 않았다. 이 과장이 선주와 현장 선박 건조 노동자들, 그리고 이쪽 업계의 사정에 밝지는 못했던 탓이다. 반평생 해온 일이 연구였기에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동료들은 이 과장의 업무가 서툴었다고는 했다. 그러나 학구적이었고,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게 이 과장을 바라본 주변인들의 전언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조선업 경기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삼성중공업은 150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희망자를 모집한다고 사내에 발표했다. 희망자가 대상이라고는 했지만 직원들 사이에 ‘어느 부서 몇 명, 몇 %가 희망퇴직 대상이다’라는 말들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명, 두 명, 잇달아 부서·팀장과 면담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장은 자신의 팀에서 가장 먼저 면담을 받은 사람이었다고 유족과 일부 동료들은 주장했다.

40명까지 늘어날 것이라던 이 과장의 팀에서는 2~3명이 퇴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만에 면담 대상자 1명, 대상자가 아닌 2명 등 총 3명이 회사를 떠났다고 유족과 일부 동료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면담을 하고도 회사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불편한 회사 생활을 보내야했다. 퇴직한 한 동료는 “비슷한 업무, 비슷한 성과를 냈는데도 면담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공개된 장소에서, 모든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더 큰 소리로 질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대상자들에게는 ‘업무를 몰아주고 부담을 지우는 일’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에서 ‘찍퇴’ 문화가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한 번 ‘찍힌’ 사람은 표적이 돼 회사에서 퇴직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직원들 사이에서 거론된 희망퇴직자의 요건은 ‘50대 이상의 고령, 2년 연속 낮은 업무 고과, 2년 이상 승진하지 못한 경우’ 정도로 요약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업무와 언어로 압박을 주지 않으면 상급자가 일부러 낮은 고가를 매겨 퇴직 대상에 올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과장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희망퇴직 대상에 올랐는지’도 궁금해했으나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결혼식을 올리고 사고 당시 두달 된 아이를 갖고 있어 퇴직을 그만두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꾸준히 회사를 다녀야 했다. 퇴직한 동료는 “이 과장은 담배도 안피면서 회사 옥상에서 멍하니 서 있기도 했고, 공개적인 질책 뒤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기도 했다”며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잘 버티자’며 격려하며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 1500명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은 있었지만, 올해는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장의 유족들과 퇴직 동료들은 올해에도 이 과장이 희망퇴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상급자로부터 업무 압박을 꾸준히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과장은 지난 4월부터는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그는 대학교 때부터 우울증을 앓아 약을 복용해오고 있었지만 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가족들은 증언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구조조정도 있어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 새벽에 일찍 깨서 낮에는 집중이 안된다”며 “희망퇴직 말이 나오면서 사람들을 피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 2월에도 친구들을 만나 ‘희망퇴직’에 대해 거론했다고 유가족들은 전했다. 유가족이나 친척들, 동료들이 무언가 어려움을 겪으면 상담을 해 주고, 자신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남 탓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가족들과 동료들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밤 11시에 잠들고도 다음날 새벽 3시에 잠에서 깨는 생활을 최근 들어 반복했다고 한다. 결혼생활의 스트레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이 과장의 죽음을 ‘개인적인 일’로 규정하며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유가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유족들은 이 과장이 희망퇴직의 압박 때문에 숨졌다며 회사 측의 산재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업무상 재해를 판단할 때는 가혹한 환경, 과다한 업무량뿐 아니라 개인의 성격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과장이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면서 “최근 3개월간 2시간 이상 초과근무한 적은 11일에 불과해 업무 강도가 셌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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