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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최저임금 1만원, 왜 아픔은 늘 청년과 소상공인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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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Weconomy | 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이런 시급 6030원> 청년유니온 등 지음/북,콤마(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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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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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면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에서 출발하라.” 미국 시카고 빈민운동의 대부 사울. D 알린스키의 말은 변화의 ‘전차’를 앞으로 굴리려면 이상, 가치, 상상력의 반대편에 냉철한 현실 인식의 바퀴가 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1960년대 이후에는 민권운동 지도자로 활약한 알린스키는 젊은 시절 사회변혁을 꿈꾸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 후보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커간다. 이달 15일 첫발을 뗀 올해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 지난해 탈퇴했던 노동계가 복귀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믿어보자는 것이다. 국민의 66%가 인상에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도 있다.(4월 12일 우리리서치 조사, 1003명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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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기준 건강보험 국민연금 직역연금에 가입한 임금근로자의 1500만개 일자리에 대한 세전소득. 일용근로자, 특수형태종사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에 미가입한 취약근로자,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는 제외. 자료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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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명이 넘는 최저임금 노동자가 굽은 허리를 조금이나마 펼 수 있게 하는 시급, 1만원. 잠시일 줄 안 아르바이트가 평생직업으로 굳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청년이 다시 꿈을 꾸게 하는 시급, 1만원이다.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도 따라서 오르고, 이렇게 늘어난 소득이 소비와 생산으로 선순환하는, 문재인 표 ‘소득주도 성장’의 첫 단추도 최저임금 인상이다.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해마다 최저임금을 15.7%씩 올려 3년 뒤 1만원의 시급을 만드는 목표가 절대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 노동자의 대부분을 고용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처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말 현재 국내 자영업자의 51.8%는 한 해 매출이 46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한 달에 400만원 어치도 안 팔린다는 얘기다. 매달 장사해서 남기는 이익은 187만원에 불과하다. 시급이 1만원이 되면 장사 접고 아르바이트하는 게 나은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사장님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150만명의 자영업자가 진 빚이 작년 말 기준 520조원으로 한해 사이 60조원이 늘어났다. 생계형으로 창업한 자영업자들이 경기 부진으로 한계상황에 몰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중소기업중앙회는 3년 내 1만원으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중소기업은 내년에 16조2151억원, 2019년 42조2557억원, 2020년 81조5259억원의 인건비를 더 부담하게 된다고 밝혔다. 3년간 추가 부담액이 140조원이라는 계산이다. 소상공인도 2020년까지 더 부담할 인건비가 36조원이라는 계산을 내놨다.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소상공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230만명이 연평균 2300시간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함)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 ‘폐업 도미노’가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 ‘분노는 쉽고 해법은 멀다’(<조선일보> 6월 8일치)는 등 언론의 우려도 쏟아진다.

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에 걸려 넘어진 곳에서 새길은 이어진다. 다시 앞으로 나가는 힘은 이번에는 상상력에서 나온다. 바로 최저임금을 청년과 소상공인·자영업자 사이의 ‘제로섬’으로 보는 생각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청년과 소상공인이 최저임금을 놓고 연대할 수는 없느냐고 물어보자는 것이다. 우리 경제가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면, 현실 경제구조의 가장 취약한 두 계층을 앞으로 내세워 자꾸 안되는 이유를 쌓아가지는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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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급 6030원>은 최저임금 결정이 왜 청년과 영세 자영업자의 대결이 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2016년 최저임금을 결정한 최저임금위원회를 노동자 쪽에서 바라본 기록이다. 최저임금만으로 한 달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직접 체험한 두 청년 언론인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 책이 기록한 2015년 여름에 열린 최저임금 심의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노동 쪽에서 몇 년간 구호로 떠돌던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안으로 제시해서 공식화했다. 비록 시급 6030원으로 결정되고 말았지만 시급 1만원의 최저임금은 2년 뒤 대선에서 문재인 현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 5당의 대선 후보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안에 실현하겠다는 공약으로 이어진다. 또 최저임금을 시급뿐 아니라 월환산액도 병기하도록 결정함으로써, 몰라서 못 받거나 알아도 주지 않던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노동자의 권리로 명확히 했다.

무엇보다 이때부터 최저임금의 당사자가 위원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노동 쪽에서 청년유니온 김민수 3기 위원장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이 위원이 됐고, 사용자 쪽에서도 자영업과 소상공인 대표 2명을 포함했다. 이 두 당사자는 71일간 이어진 협상 내내 가장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노동자 위원이 불참한 가운데 공익위원이 제시한 6030원을 놓고 마지막 표결을 하는 자리. 전년 대비 450원(8.1%) 오른 최저임금 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를 대표한 2명의 사용자 위원은 퇴장했다.

김민수 위원장은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를 대표해 들어온 위원의 앞자리에 앉아 “최저임금을 두고 팽팽한 입장의 차이와 갈등을 확인하는 과정이 몸서리치도록 괴로웠다”고 책에서 회고한다. 그들의 고단함이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의 고단함과 뿌리가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낮은 최저임금으로 하루하루 신음하는 청년 노동자의 삶과 그 임금조차 주기가 버거워 미래를 비관하는 소상공인의 삶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약자를 짓밟는데 너무 관대했던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불평등하게 조직된 경제구조는 국민소득 3만 불을 앞둔 지금까지 이어져 수많은 중소, 영세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을 열악한 지위로 내몰아왔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을’끼리의 대결이 아니라 연대다. 그 바탕은 ‘동병상련’이다.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청년과 노동상담을 할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 사장님도 어렵게 장사하는데, 이렇게 상담하면서 돈 받는 게 괜찮은지 잘 모르겠어요” … 나는 그 한마디에서 없는 사람끼리 갈등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아픔, 그럼에도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의 따뜻함을 동시에 발견한다. 그 어리숙하고 따뜻한 마음이 모여 사회의 정의로움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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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부터 아르바이트 시급을 1만원으로 올리기로 한 서울 마포구 ‘비 온 뒤 숲 속’ 약국 약사 장영옥씨.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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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비 온 뒤 숲 속’ 약국 (<한겨레> 2017.6.12 ‘최저임금 1만원 내건 약국…운영 어려워질까 걱정되지만’)이나 서울 영등포구의 양평 ‘왕갈비 집’(<한겨레 21> 2017.7.3 ‘적자여도 시급 1만원 줄래요’) 같이 어렵지만 시급 1만원을 먼저 실천하는 자영업 사장님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책이 결론처럼 꾹꾹 눌러쓴 이 말이 새삼스럽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은 소상공인의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과정과 맞물려 가야 한다”

어떻게 말인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뒤에 숨어 보이지 않는 건물주, 프랜차이즈 본사, 원청 대기업이 한 발 앞으로 나와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분의 일부나마 내겠다고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마침 정의당이 꼼꼼히 보완책을 내놓았다. 원청기업과 본사가 중소기업이나 가맹점·대리점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일부 부담하도록 할 수 있다. 상가임대료 인상제한 등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손을 봐야 한다. 대기업에 비해 높은 중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도 인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회보험료 지원, 복합쇼핑몰 입점 제한 등 골목상권을 지키는 방안도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최저임금에는 많은 사연이 있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야 겨우 살아내는 청년, 저소득 가장, 빈곤노인부터 이런 시급조차 주기 버거운 치킨집, 커피전문점, 김밥집 사장님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결국 약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며 아무것도 변치 않는 것을 방관하기엔 현실의 고단함이 너무 크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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