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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노병의 장진호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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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년만에 한국 온 길리스씨

"전우 잃고 귀국후에도 죄책감… 값진 희생, 한국이 증명해줘야"

조선일보

25일 오후 6·25 참전 용사 제임스 워런 길리스(87·사진)씨가 전우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유엔 참전국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명비(名碑) 앞에 섰다. 그는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거수경례했다. 1951년 떠난 지 66년 만에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한국 땅을 밟은 노병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길리스씨는 미국 해병대 사상 피해가 아주 컸던 전투 중 하나인 '장진호(長津湖) 전투'에 참가했다. 미(美) 해병 1사단 소속으로 파병된 길리스씨는 1950년 11월 26일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까지 북진했다. 그곳에서 중공군 12만명의 매복 작전에 걸렸다. 포위망을 뚫기까지 17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아군 1만3000여 명 중 3500명이 사망하고 약 7000명이 부상했다. 이들이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면서, 10만5000여 병력과 민간인 9만1000명이 배를 타고 거제도 등으로 온 '흥남 철수'가 가능했다.

지난 23일 만난 길리스씨는 "땀으로 가득 찬 군화를 벗으면 손과 발이 금세 얼어붙었다"며 "무기는 물론이고 부상병에게 써야 할 수혈관·모르핀조차 얼어붙었다"고 회상했다.

길리스씨는 전장을 함께 누볐던 동갑내기 동료 2명을 잃었다. "10배가 넘는 중공군에게 둘러싸였던 절체절명 위기에도 결코 두려움과 공포는 없었다"고 노병은 증언했다. 하지만 이듬해 4월 귀국 후에도 '왜 내가 아닌 다른 전우가 죽었을까' 하는 죄책감은 떨치기 힘들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길리스씨를 비롯해 장진호 전투에 몸담았던 참전 용사들은 'Chosin Few'라는 추모 모임을 결성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Chosin'은 장진(長津)의 일본어 발음을 영어로 표기한 것이고, 전쟁에서 생존자가 몇 안 된다 하여 'Few'라는 단어가 붙었다. 현재 미국에 있는 장진호 전투 생존자는 1000여 명이다. 이번 방한에는 딸 테레사(55)가 동행했다. 길리스씨는 "폐허에서 상전벽해가 된 서울의 회생(revitalization)이 놀랍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우리의 희생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이제는 한국인들이 증명해 달라"고 말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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