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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시론] 自虐하기 위해 OECD 가입한 것 같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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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라 OECD 자살률 1위?

맹독 제초제와 우울증 방치가 보다 정확한 이유일 수 있어

국민의 분노 감정 자극하려고 오류·과장된 자료 인용한다면 처방도 빗나가게 돼

조선일보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대한민국은 2003년부터 13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2017년도 세계 보건 통계에서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83개국 가운데 4위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나라를 '모범 사례 국가'로 소개했다. 2011년 11월 이후 한국 정부의 파라콰트 맹독성 제초제 판매 금지를 높이 평가한 결과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자살률은 흔히 '헬조선'의 대표적 징후로 인식되고 있다. 빈곤과 경쟁의 심화를 자살 원인으로 단정하려는 여론 때문이다. 하지만 자살의 실제 이유와 정황은 이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특정 농약에 대한 접근성 제한이 음독자살을 줄이듯이 아파트와 같은 고층 빌딩의 증가는 투신자살을 늘일 수 있다. 자살은 항(抗)우울증 치료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환자인데, OECD 국가 가운데 항우울증 치료는 우리나라가 맨 꼴찌 수준이다.

OECD 발표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OECD 통계를 인용하며 곧잘 자탄과 자학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노인 빈곤도 마찬가지다. OECD 발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세계 1위가 대한민국이다. 노인의 49.6%가 빈곤 계층에 속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 수치는 노인 빈곤율이 아니라 수입(收入) 빈곤율을 가리킨다. 우리처럼 연금제도가 발전하지 않는 나라의 노인 복지는 원천적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는 계산 방식인 것이다. 이 통계는 노인의 재산 소득이나 임대 소득을 제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특히 부모 생활비 주(主)제공자의 과반이 자녀라는 한국적 효(孝) 문화를 외면하고 있다.

OECD 최하위라는 한국의 출산율도 곰곰이 따져볼 여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젊은 세대의 빈곤이 혼인율을 낮추고 그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혼인율이 낮아져도 출산율은 높아지는 일이 흔하다. 이는 혼인율 증가를 통해 출산율을 제고하는 고전적 방법 이외에 비혼(非婚) 출산에 대한 사회적 관용과 국가의 책임도 인구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귀띔해 준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OECD 국가 중 최장이라는 통계 역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임금 체계나 노동 강도의 국가 간 차이가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DB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을 두고 지상 낙원이라거나 태평성대라는 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 사회 양극화, 청년 실업, 노후 불안, 인구 절벽 등 도처에 지뢰 아니면 암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준에서도 우리나라가 '수용소 군도'나 '아오지 탄광'은 아니다. 무엇보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이른바 '헬조선 OECD 50관왕'이라는 문건 자체를 OECD는 생산한 적이 없다. 또한 그 가운데 대부분은 잘못 짜깁기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근 우리나라 통계청이 확인한 바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OECD발(發) 헬조선 담론'을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은 단연 분노다. 민주화 이전이 대체로 헝그리(hungry) 시대였다면 그 이후는 확연히 앵그리(angry) 사회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분노는 마침내 대폭발을 경험했다. 그 여세를 따라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과 개혁 정치를 위한 권력 자산으로 분노 에너지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고 유도하고 확산하는 데 있어서 OECD 통계의 인용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이나 시민단체, 심지어 학계에서까지 OECD 통계 사대주의가 성행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분노 그 자체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이 될 수 있기에 시인 변영로는 종교보다 깊은 것이 '거룩한 분노'라 했다. 그러나 걸핏하면 OECD 통계에서 비롯되는 한국 사회의 분노는 진정성의 측면에서 거룩하지 않은 대목이 많다. 국민적 분노의 출처가 오류와 과장, 그리고 통계적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료일 경우, 잘못되거나 빗나간 처방의 길로 이끌 위험마저 배제하지 못한다.

20여년 전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한 이후 우리는 오히려 불행해졌는지 모른다.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린 탓이 아니라 모든 것을 수치와 등수로 평가하는 양적 세계화 대열에 무턱대고 합류한 결과다. OECD 성적표가 우리 사회를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야말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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