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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정부 지침 무시한 '국방전자조달시스템'...이대로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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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뉴스 박근모 기자] 연간 약 10조원 이상의 전자입찰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방부 산하 방위사업청이 운영하는 국방전자조달시스템(국방전자조달)이 행정자치부와 기획재정부의 지침을 무시한채로 운영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국방전자조달을 통해 육군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60억원 규모의 PC 도입사업에 있어서 조달 물품의 세부 사양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사전규격공개' 과정이 무시된채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방전자조달을 운영하는 방위사업청은 자신들은 국방부나 육군본부 등에서 조달 공고문이나 요청서를 제출하면 그에 따른 조달 업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일뿐이라고 항변했다. 또한, 해당 조달 사업 제안서를 작성한 육군본부 정보체계관리단과 입찰ㆍ계약 업무를 진행한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은 서로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며 변명에 급급하고 있다. 60억원대 조달 사업을 두고 전자조달 플랫폼을 제공한 방위사업청과 조달 사업 제안서를 작성한 육군본부, 그리고 입찰ㆍ계약 업무를 진행한 국방부까지 사업은 진행 중이지만 이에 대한 책임자는 어디에도 없는 '깜깜이' 상황이 진행 중이다.

모든 국내 공공기관의 입찰정보를 한 곳에 모아서 조달업무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조달청이 운영하는 것이 바로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KONEPS)'이다. 흔히 '나라장터'라고 부른다. 나라장터는 국내 모든 공공기관들을 대상으로 물품 조달을 위한 '입찰공고', '입찰', '계약', '대금지급' 등 전 과정을 인터넷 상으로 처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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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사업청이 운영하는 국방전자조달시스템. 군수품 등 군에서 사용하는 물품 조달 업무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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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하게 군수품과 같은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 조달 업무 전과정을 인터넷 상에서 처리할 수 있는 '국방전자조달'이 존재한다. 이는 국방부 산하의 중앙행정기관인 '방위사업청'이 운영하고 있다. 대통령령 제27958호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국가계약법 시행령) 제33조 입찰공고에 관한 항목을 보면 '입찰방법에 의하여 경쟁에 부치고자 할 때에는 이 시행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조달시스템을 이용하여 공고하여야 한다'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국가 대상의 계약을 맺기 위한 입찰공고는 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 공고해야한다. 때문에 국방전자조달에 등록된 입찰공고 역시 나라장터에 연계돼 공고된다. 이는 군에서 요구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동일한 수준의 입찰 과정이 이뤄진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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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원 규모의 PC도입사업에 있어서 특정제품만을 표기하고 사전규격공개 절차가 생략되는 등 의혹이 제기됐다.(육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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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원 규모 PC도입사업 두고 의혹 제기

최근 육군본부는 지난 2011년 도입된 행정업무용 데스크톱 PC를 교체하기 위해 '2017년 PC(중소) 도입사업'을 경쟁 입찰로 제안했다. 해당 사업은 각급 부대로 PC 8206대가 도입되며, 총 예산은 59억9038만원에 달한다.

육군본부의 제안으로 육군 내 각종 전산장비 운영ㆍ관리를 맡고 있는 육군본부 직할 부대인 정보체계관리단이 공고한 '2017년 PC(중소) 도입사업 제안요청서'에 의하면 육군본부는 데스크톱 PC 본체의 중앙처리장치(CPU) 규격을 '인텔 코어 i3-6100(3.7GHz)급 이상'으로 명시했다. 이는 행정자치부와 기획재정부의 CPU 제조사가 인텔과 AMD 2곳이라면 체계규격에 인텔 제품과 AMD 제품을 병기해야 한다는 지침을 역행하는 것이다.

특히 해당 제안요청서의 체계규격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필수항목'과 '일반항목'으로 나뉜다. 평가 배점 항목 규정에 따르면 필수항목은 '한 항목이라도 미 충족시 불합격'되며, 일반항목은 '항목별 미 충족시 감점 처리'가 된다. 여기서 정보체계관리단은 필수항목으로 인텔 코어 i3-6100(3.7GHz)급 이상을 지정해 뒀다. 결국 인텔 제품이 아니라면 무조건 불합격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조달 사업에 참가하려는 민간 사업자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나라장터와 국방전자조달의 조달 사업에 여러번 참가했다는 민간 사업자들은 이번과 유사한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는 실제 입찰에 참가하다보면 빈번하게 맞닥뜨린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비단 국방전자조달뿐만 아니라 나라장터에서도 알게 모르게 암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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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에서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공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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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침에도 개선 안돼

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국가계약제도 운영과 관련된 유의ㆍ협조사항 통보'를 국방부, 방위사업청, 조달청 등을 비롯해 각 정부 부처에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을 통해 기획재정부는 "업무용 PC 구매계약과 관련해 CPU의 규격을 특정회사 제품으로만 한정해 발주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계약 예규 '정부 입찰ㆍ계약집행기준' 제5조 제1항 제5호에 따라 ▲물품의 제조ㆍ구매 입찰 시 부당하게 특정상표 또는 규격이나 모델을 지정해 입찰에 부치는 경우 ▲입찰조건 등에서 정한 규격ㆍ품질ㆍ성능과 동등이상의 물품을 납품할 때 특정상표 또는 모델이 아니라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하는 경우 등을 금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용 PC 구매에 있어서 CPU의 규격을 특정회사의 제품만을 지정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통용되는 주요 제품을 병기하거나 '그 외 동등이상의 물품' 문구를 명기해야 한다"라며 "이와 동등이상의 물품을 납품하는 경우, 특정회사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납품을 거부하지 않도록 조치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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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물품 조달 시 시중에 통용되고 있는 제품을 모두 표기해야한다.(자료=국방전자조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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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해당 공문을 통해 '중앙처리장치(CPU) : 인텔 쿼드 코어(4쓰레드 이상)'라고 특정회사 제품만 명기한 경우를 '잘못된 예'라고 설명하며 '중앙처리장치(CPU) : 인텔 쿼드 코어(4쓰레드 이상) / AMD 듀얼 코어(동작속도 3GHz 이상) 또는 쿼드 코어(동작속도 3GHz 이상)'라고 주요회사 제품을 병기한 경우를 '잘된 예'라고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작년 10월 행정자치부도 동일한 내용의 공문을 각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기업, 지방출자출연기관 등에 보내며,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집행기준' 제1장 제1절7-나에 따라 입찰 및 계약시 금지해야 할 사항으로 "입찰공고나 설계서ㆍ규격서ㆍ사양서 등에 부당하게 특정 규격ㆍ모델ㆍ상표 등을 지정해 입찰하거나 계약을 하는 경우"를 꼽으며 "업무용 PC 구매 시 시장에서 통용되는 주요 제품을 병기하도록 조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지난 2015년 11월 6일부터 시행된 행정자치부의 '행정업무용 다기능 사무기기 표준규격'에 따르면 PC 표준규격을 CPU 제조사인 인텔과 AMD 2곳으로 나눠 저사양형, 기본형, 고급형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행정업무용 다기능 사무기기 표준규격은 각급 행정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행정업무용 다기능사무기기의 표준규격으로 모든 국가 기관은 해당 지침에 적용받게 된다. 이번 60억원 규모의 육군본부 PC 도입사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사전규격공개 생략 등 절차적 하자도 발생

이밖에도 물품 조달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가 기관이 나라장터나 국방전자조달을 통해 물품을 구매할 경우 입찰 공고 등록 이전에 '사전규격공개'라는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다. 사전규격공개 제도는 입찰공고 전 발주 서류를 미리 공개하는 것으로 기획재정부 계약 예규에 따라 5000만원 이상 물품이나 용역은 입찰 공고 전에 구매규격을 5일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입찰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특정업체에 유리한 규격이나 조건을 구매규격서에 반영해 소수업체들이 수주를 독점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사전규격공개 과정을 통해 불공정한 방법으로 특정규격을 반영하는 경우나 입찰에 참가하려는 업체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계약담당자가 14일 이내에 이를 검토해 조치후 통지를 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육군본부 정보체계관리단과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이 진행한 이번 60억원 규모의 PC 도입 사업에서 사전규격공개 과정에 빠졌다는 점이다. 결국 해당 물품 조달 제안서는 입찰 참여 업체의 이의제기 과정없이 원안이 확정된 상태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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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진행된 PC도입사업 8건 중 4건만 사전규격공개 절차가 진행됐다.(자료=국방전자조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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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국방전자조달에 올라온 PC 도입 입찰 공고를 살펴보면 총 8건 중 사전공개를 한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입찰 공고에서는 사전공개 과정이 생략돼 해당 물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로 이의제기 과정없이 본 입찰이 진행된다.

국방전자조달을 운영하는 방위사업청 대변인실은 이같은 의혹에 대해 "방위사업청은 국방전자조달시스템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맞다"라며 "조달 물품에 대한 세부 내용이나 방식을 정하는 것은 해당 사업자 측의 권한으로 우리는 이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당 PC 도입사업의 입찰ㆍ계약 업무를 담당한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의 담당관 문춘오 대위는 "국군재정관리단은 이번 PC 도입사업에 있어서 세부 규격을 정함에 있어서 관여하지 않았다"라며 "해당 사업 제안서를 작성한 쪽으로부터 넘겨 받은 제안서 그대로 국방전자조달에 올렸을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PC 도입사업 제안서를 작성한 육군본부 정보체계관리단의 담당관 오승철 사무관은 해당 내용에 대해 여러번 내용 확인을 질의했지만 이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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