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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朝鮮칼럼 The Column] 국민은 취임 초 열흘보다 그 이후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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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의 취임 후 열흘… 사회적 양극화 해소와 협치, 강력한 安保 의지 등 보여줘

초기 지지 못 이어간 역대 정부 전철 안 밟고 개혁과 통합할지 국민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어

조선일보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민주주의의 발전은 보통 ①권위주의 정권의 해체→②민주주의로의 이행→③민주주의의 정착(또는 공고화)→④민주주의의 심화 등 네 단계로 구분된다. '정착'은 민주적 제도와 문화가 견고하게 뿌리내리는 것을 지칭한다. '심화'란 이처럼 확립된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차원에서 민주화되는 것이다. 주변화되고 소외된 모든 계층이 정치적 평등은 물론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평등을 상당한 수준에서 누리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실천이 단순히 공식적인 정치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직장·학교·가족 등 다양한 사회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포함한다. 요컨대 심화는 현행 자유민주주의에서 평등과 참여의 요소가 대폭 강화되는 것이 핵심이다.

서구 민주주의 역사가 보여주듯 민주주의 정착과 심화는 단선적인 과정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고 반전(反轉)이나 역전(逆轉)을 겪으면서 삼한사온(三寒四溫)식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한국 민주주의 역시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두 번째 단계인 이행까지 대체로 마무리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정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 민주주의나 인권 보장의 객관적 국제 지표에서 분명 퇴행적인 국면을 보이며 민주주의의 반전을 경험했다. 특히 지난 박근혜 정부는 이른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극단적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대통령이 민주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만 일단 취임하면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것처럼 전권을 행사하는 왜곡된 민주주의' 곧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칭한다. 이는 20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일어난 새누리당의 공천 파동, 김기춘·우병우 등 검찰 출신 청와대 수뇌부의 은밀하고 집요한 국정 농단,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작년 10월 말부터 전국적으로 열린 촛불 집회는 박근혜 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괴'를 다수 국민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규탄하고 저지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기록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국회에 의한 탄핵 소추와 헌법재판소에 의한 대통령 파면 결정은 민주적 헌정 질서 파괴에 맞서 차단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작동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자생적인 내구력과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온 국민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인시킨 일대 전기였다. 지난 9일 실시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한국 정치도 반년 이상 지속된 정치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이제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는 수순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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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5당 원내대표와 오찬 회동을 위해 청와대 상춘재로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인수위 없이 선거 다음 날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열흘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취임 당일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하고, 12일에는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노조를 직접 방문해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미 동맹이 외교·안보의 근간'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한편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대북 강경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문 대통령의 안보 의지에 대한 일부 국민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또한 청와대 참모들과 경내를 함께 산책하거나 기술직 공무원들과 점심을 같이하거나 취재 기자들과 북악산 산행을 하는 등 격의 없이 소통하는 소탈한 풍모를 보여주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숨진 기간제 교사의 순직 처리를 지시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유족과 광주 시민을 위로하는 연설로 상처받은 국민을 보듬는 데도 앞장섰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여야 5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여·야·정 국정 협의체 구성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선거 공약이었던 협치(協治)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취임 후 지난 열흘 동안 보여준 문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대다수 국민이 지지·환영하고 향후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를 밝힘으로써 한국 정치에도 새 전기가 움트는 것 같다. 일부 야당 정치인들도 그의 행보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향후 적폐 청산(개혁)과 국민 통합의 동시적 실현이라는 과제를 추진하면서 맞게 될 험난한 정국을 예상할 때 문재인 정부가 계속 순항할지 결코 속단할 수 없다. 역대 정부 출범 초기에 국민이 품었던 높은 기대와 새 정권을 향해 보낸 지지가 실망 속에 추락한 게 다반사였다. 취임 초 감동 행보를 넘어 정책과 성과에서도 민주주의의 심화를 향해 일대 전진할지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을 새 정부는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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