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흉터없이 수술… 한국의사 손재주에 외국의사 '엄지 척'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늘의 세상]

배꼽 구멍 하나로 암수술까지… '단일공 복강경' 인기

- 왜 한국서 무흉터 수술 뜰까

의사들 수술법 금세 익히고 대중목욕탕·찜질방 등 맨살 노출 많은 문화도 영향

수술 후 합병증·통증도 적어

대학생 최모(22)는 지난해 지름 20㎝ 거대한 난소종양을 떼내는 수술을 받았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그녀가 수술받은 줄 모른다. 찜질방을 같이 다니며 최씨 맨살의 배를 보아도 수술 자국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술 흉터는 배꼽 주름 안에 가려져 있다. 거기에 구멍 하나만 뚫고 수술 기구가 들어가 난소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이른바 단일공 복강경이다. 집도의인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김상운 교수는 "배꼽에 구멍 하나 뚫고 들어가 암세포가 있을지도 모를 커다란 난소종양을 터뜨리지 않고 비닐에 싸서 배꼽 구멍으로 꺼냈다"며 "이제는 단일공으로 산부인과 수술 대부분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흉터 없는 단일공 복강경 인기

'무흉터 단일공 수술 ○○○건 돌파' '흉터 없는 자궁근종 수술 개시' 등 요즘 병원마다 단일공 복강경을 알리는 홍보가 부쩍 늘었다. 그만큼 환자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일공은 배꼽에 지름 1.5~2㎝ 구멍 하나만 뚫고, 이를 통해 수술 기구 2개와 수술 부위를 비추는 카메라를 배 안으로 넣어서 하는 수술을 말한다. 수술 흉터는 배꼽 주름에 자연스레 가려진다. 기존 복강경 수술은 배 곳곳에 3~5개 구멍을 뚫어 수술 기구와 카메라를 따로따로 집어넣는 방식이다. 구멍마다 작게 흉터가 남는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기술과 장비 발달로 단일공 수술 대상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담석증, 충수돌기염(맹장염), 탈장, 자궁근종, 자궁암·난소암 등은 물론 위암·대장암·직장암·방광암 수술로도 확대되고 있다. 부인과 수술의 90%를 단일공으로 하는 산부인과 교수들이 나타나고, 1000건 이상의 수술 실적을 내놓는 외과 교수도 상당수다.

한국 의사 손재주와 대중탕 문화의 만남

전 세계적으로 단일공 수술은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활발하다는 게 의학계 평가다. 여기에는 한국만의 독특한 요인이 작동했다. 우선 구멍 하나에 수술 기구가 나란히 들어가기 때문에 수술 부위를 잡고 자르고 꿰매기 어려운데, 한국 의사들은 타고난 손재주로 수술법을 금세 익힌다. 여의도성모병원 산부인과 이용석 교수는 "손놀림이 더딘 서양 의사들이 한국 의사들의 단일공 복강경 하는 걸 보면 감탄한다"며 "내장 지방이 많으면 단일공 수술이 힘든데, 한국인은 그런 환자가 비교적 적어 수술하기 좋은 면도 있다"고 말했다.

대중목욕탕, 찜질방 등 여럿이서 맨살을 노출하는 문화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몸에 조그만 흉터라도 남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단일공 복강경을 받기 위해 가능한 병원을 찾아 고르는 환자도 있다. 자궁·난소 수술에 많이 쓰이면서 흉터에 더 민감한 여성 환자들 때문에 단일공이 인기를 끄는 측면도 있다.

안전성, 기존 방법과 차이 없어

단일공 복강경이 확산하는 데는 수술 안전성과 효과가 기존 방식과 차이가 없다는 점이 속속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 분석에 따르면, 자궁절제술의 경우 단일공 수술 시간은 기존 복강경보다 30분 정도 길었으나, 수술 후 합병증과 통증 발생률은 단일공이 적었다〈그래픽〉. 수술 조작에 노출되는 신체 부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3400여건의 단일공 복강경을 한 대전성모병원 외과 이상철 교수는 "단일공 조작 기술에 익숙해지면 수술 시간이 기존 복강경보다 더 빨라진다"며 "도입 당시 '수술이 무슨 서커스냐'고 무시했던 의사들도 이제는 단일공을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단일공에 로봇 팔을 넣어 원격 조작하는 로봇 수술도 국내에 도입돼 있다. 췌장 종양과 담낭 수술의 30% 정도를 단일공 로봇으로 하는 서울대병원 외과 장진영 교수는 "복잡한 암 수술을 하는 데는 아직 단일공 기법이 어렵고 제한이 있다"며 "무흉터보다는 수술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삼아 수술법을 고르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