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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소시민에 초점 맞춘 푸치니에 푹 빠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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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나비부인' 연출 비비언 휴잇]

"연출 제안받고 온갖 '나비부인' 봐… 인물 심리까지 2년간 연구했죠"

조선일보

휴잇은 “마음의 자유를 향해 죽음도 마다치 않았던 ‘나비부인’의 결기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베르디는 귀족이나 영웅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요. 반면 푸치니는 바느질로 먹고사는 미미('라 보엠')나 권력자에 속아 불행하게 죽는 연인('토스카')처럼 보통 사람에게서 위대한 역사를 끌어내죠. '나비부인'을 보세요. 20세기 초 일본이 배경이지만 국제 결혼한 부부, 혼혈아 아들, 남편의 변심 등 지금 이곳으로 바꿔도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이야기여서 오래 사랑받는 겁니다."

수지오페라단(단장 박수지)이 28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을 선보인다. 2000년 이탈리아의 '토레 델 라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영국 연출가 비비언 휴잇(61)이 연출해 성공한 무대다. 1952년부터 해마다 7~8월이면 이탈리아 피사 근처 마사추콜리 호수 노천 무대에서 푸치니 오페라 4~5편을 매일 밤 선보이는 이 페스티벌은 마리아 칼라스와 '스리 테너' 등 정상급 음악가들이 찾아와 노래한 유서 깊은 축제다.

지난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휴잇은 "연출을 제안받고 그때까지 나온 '나비부인'을 모조리 찾아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나비부인'을 보여주리라 다짐했었다"고 했다. "스물일곱이던 1983년부터 이 축제에서 연출가로 작업했어요. 그전부터 푸치니를 몹시 좋아해 그의 생애와 가치관, 음악을 꿰고 있었죠. '나비부인'의 시대와 배경을 파고들어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인물들의 심리까지 2년간 연구했어요."

조선일보

이탈리아 토레 델 라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 비비언 휴잇이 연출한 오페라 ‘나비부인’의 한 장면. /수지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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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초 일본 나가사키. 몰락한 집안을 보살피기 위해 기생이 된 나비부인은 미 해군 중위 핑커톤과 결혼한다. 둘 사이엔 아들이 태어나지만 미국으로 돌아가 미국 여자와 결혼한 핑커톤은 나비부인에게 돌아갈 마음이 없다. 나비부인은 단검으로 자신을 찔러 목숨을 끊는다. "푸치니가 '나비부인'에서 그려내고자 한 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강한 여인이었다"고 휴잇은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된 어머니와 네 자매 사이에서 자란 푸치니는 강인한 여성을 좋아했어요. 실제 그의 어머니는 스무 살 연상 남자와 재혼해 딸 넷을 모두 교사로 길러냈어요. 딸들이 독립적으로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푸른 조명이 어른거리는 무대엔 현대 일본 조각가 야스다 간이 만든 커다란 문(門)만 덩그러니 놓인다. "일본에서 두 개의 문은 죽음을 뜻한다"고 했다. 휴잇은 나비부인의 몸에서 기모노도 벗겨 냈다. 대신 하루만 피고 지는 붉은 파파베로(양귀비속) 꽃같이 새빨간 가운을 씌워 그녀의 결기를 드러낸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오페라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휴잇은 한동안 생각 끝에 답했다. "직설적으로 말할게요. 유럽 사람들은 TV를 통해 한국을 많이 봤지만 한국 문화는 잘 알지 못해요. 한국인의 내면을 드러내면서 유럽인의 심금도 울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야죠." 휴잇은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나비부인'처럼 한국 문화를 관통할 재료로서의 문학이 먼저 필요하다"고 했다.

2017 수지오페라단 오페라 '나비부인'=28~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42-0350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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