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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동성애 놓고 줄타기 거듭한 미 대통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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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클린턴, 동성애자 표심을 구한 첫 대통령

부시, 동성애자를 공개적으로 만난 첫 공화당 대통령

오바마, 동성결혼을 지지한 첫 대통령



동성애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본격적인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0년대다.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던 동성애 이슈는 미국 진보와 보수가 치열하게 대립하기 시작한 이때부터 총기·낙태와 함께 표심을 좌우하는 가장 민감한 주제로 떠올랐다.

대통령 후보 중 동성애를 이슈화한 첫 주자는 1991년 대선에 나선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였다. 그는 후보 시절이나 대통령이 된 뒤에도 이 주제를 놓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후보 시절엔 할리우드에서 동성애자들과 만나는 모습을 공개했다. 대통령이 된 뒤 1993년에는 동성애자들이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으면 군복무를 할 수 있게 한 ‘돈 에스크, 돈 텔’(묻지도 말고, 대답하지도 마라) 법에 서명했다. 동성애 진영은 이에 대해 클린턴을 비난했으나, 클린턴으로선 동성애자 군복무를 금지한 기존 법을 완전히 철폐할 수 없었던 현실에서의 타협책이었다.

클린턴은 1996년 결혼은 이성간의 결합임을 규정한 ‘결혼수호법’에 서명하고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도, 성정체성과 관련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임기말인 1997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애 단체 모임에서 연설을 하며 직장에서 동성애자를 보호하는 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퇴임 뒤인 2009년부터는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합법화를 촉구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2000년 대선에서 후보들은 동성애 이슈에서 이전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는 동성애자 권리 확대를 약속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범죄를 증오범죄에 포함시키는 증오범죄방지법 제정을 공약했다. 하지만, 고어는 동성애자 군 복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번복하는 등 보수표를 의식한 행보를 보여 동성애자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도 동성애에 완강하게 반대하던 기존 공화당 입장보다 약간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1994년 주지사 선거에서 동성애를 불법화한 법을 개정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봉쇄할 것이라고 공약했으나, 주지사 재임 시절에는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결혼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도 있다”로 완화된 텍사스가족법에 서명했다. 2000년 대선에서 부시는 동성결혼에 명백한 반대입장을 밝혔지만,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를 결정할 주정부의 권리를 인정했다. 또 동성애자의 사실혼을 인정하는 버몬트주의 시민법에 대해 언급을 회피했다. 그는 동성애자임을 밝힌 공화당원과 공개적으로 만난 첫 공화당 대선 후보였다. ‘돈 에스크, 돈 텔’ 정책도 지지했다.

부시는 대통령 재임 시절 동성애 이슈에 대해 오락가락했다. 클린턴 행정부에 이어 동성애자를 내각에 공개적으로 포함시키기도 했지만, 동성결혼 금지를 명시하는 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하지만, 동성 커플의 사실혼 권리를 인정하는 ‘시민 결합’에도 찬성했다. 2007년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범죄를 증오범죄에 포함시키는 법과 직장내 동성애자 차별금지법에 반대했다. 유엔의 성정체성 권리선언에 대한 지지도 거부했다. 부시는 퇴임 뒤 동성결혼 문제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동성애에 대해 가장 진보적 입장을 보인 대통령이었으나, 그 역시 이 주제에 대해 갈지자 걸음을 걸어왔다. 1996년 상원의원 출마 때는 “동성결혼 합법화을 지지하고, 이를 막는 모든 시도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원의원에 당선된 2004년 선거에서는 “나는 가족동반자 관계와 시민결합법의 강경한 지지자이나, 동성결혼 지지자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이런 입장을 유지했다. “결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일이라 믿는다. 나는 동성결혼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동성결혼에 찬성하는 자유주의자들과의 만남에서 “나 또한 당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며, 내 태도가 진화하고 있다”고 입장 변경을 시사했다. 2012년 9월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는 동성결혼에 대해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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