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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대본 만들어 연기하니 수업 주인공은 “나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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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교육] 교육연극 수업 만나보기

1년에 8작품 ‘교육연극’ 수업시간

교실에서 아테네 민회 직접 열고

참정권과 평등사상 몸으로 배워

교과 내용 바탕으로 대본 직접 써보고

다 함께 몰입·연습하며 책임감 길러

지적·정서적 성장 돕는 종합 교육


한겨레

교육 현장에서 ‘연극’이 화두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연극’을 고교 선택과목으로 신설한 데 이어 서울시교육청도 최근 ‘중학교 협력종합예술활동 운영 기본계획’을 통해 정규 교육과정에서 총 17시간 이상 연극, 뮤지컬 등 협력종합예술 체험 수업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교과와 연극을 연계해 수업하는 교육연극 전문가들은 “뮤지컬과 연극 등을 만들어 연습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협업·소통 능력과 창의성이 키워진다”고 말한다. 교실과 연극. 부모세대에겐 생소한 두 단어가 함께 만나면 어떤 수업이 가능해질까?

교과서 개념, ‘몸’이 기억합니다

<수업 중에 연극하자>를 쓴 서울 방이중학교 구민정 교사는 1991년 중등 사회교사 부임 이래 27년째 교육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교육연극 수업은 매해 3월말부터 시작한다. 1년 동안 총 8개 교과연계 작품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 수업은 ‘핵심 개념 배우기-자료 조사-연극 논쟁-대본 작성-역할 나누기-리허설’ 차례로 진행한다.

중학교 2학년 사회 ‘고대 민주주의’ 단원을 배울 때 아이들은 아테네 민회를 연극으로 구현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도시국가의 시민총회를 교실로 옮겨와 ‘시민의 개념과 참정권’을 배우는 식이었다. 민회에서 ‘청소당번 정하기’ 등 학급 내에서 해결해야 할 생활 밀착형 주제로 토론하자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은 그 시대의 법에 따라 각각 남자 시민, 여자 시민, 외국인, 노예 등 계급을 ‘뽑기’를 통해 정했다. 여학생이 (‘남자 시민’만 참여할 수 있었던 아테네 민회에서) 남자 시민 역할을 맡거나 학급 반장이 노예 계급이 돼 발언권을 잃는 상황도 있었다.

구 교사는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성별과 출생 신분,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참정권이 제한되는 것의 부당함을 체험했다”며 “민주주의, 시민, 정치, 인권 등 알쏭달쏭한 교과서 속 개념어를 말과 손짓 등으로 접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가톨릭대 의예과 2학년 윤지수씨는 중학교 시절, 구 교사의 수업을 통해 교육연극을 접했다. “옛날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의견 내는 방식을 교실에서 연기하며 쉽게 배울 수 있었다”며 “교과서에 10~15줄로 정리된 추상적인 단어가 우리 몸짓과 입을 통해 살아나는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사회 시간에 ‘루터의 종교개혁’을 연극으로 만들어 유시시(UCC) 동영상 발표를 한 적이 있어요. 대학 서양의학사 수업에서 종교개혁 영향을 받은 의학자 파라셀수스 관련 내용을 배웠는데 중학생 때 배웠던 내용이 빠짐없이 기억났습니다.”

찬반 소재는 ‘연극 논쟁’ 등 토론도

‘교육연극’은 말 그대로 ‘교육 현장에서 활용하는 연극’이다. 학생들은 대본 쓰는 과정에서 교과 관련 지식·자료를 모으고, 다 함께 연극 준비에 몰입하는 가운데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입체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문화 상대성’ 단원을 배울 때는 ‘문화 월드컵 연극’을 진행했다. 다양한 민족과 풍습에 대해 학습하고 연극을 준비하는 식이었다.

당시 수업에 참여한 영동일고 3학년 안유리양은 “국가별 문화 특성을 살려 발표했다”며 “카레를 직접 만들고 알라딘의 양탄자를 타고 다니며 인도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연극을 꾸몄다”고 했다.

“6명의 친구들이 합심해 아이디어 회의 하고 인도 관련 기사를 검색·학습하며 ‘인도통’이 됐습니다. 문화 상대성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의 위험성도 알게 됐습니다.”

찬반 입장이 나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연극 논쟁’도 한다. 대본 쓰기 전 각각 찬반 입장으로 나뉘어 열띤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구 교사는 “교사가 쟁점을 제시한 뒤 팀별로 자료를 수집해 연극 논쟁을 진행한다”며 “교사의 피드백을 받은 학생들은 대사 한 줄씩 공들여 쓰며 시나리오를 완성한다”고 했다.

“팀별로 ‘논쟁박사’가 있습니다. 든든한 밑자료를 ‘팩트’로 준비해 연극 논점을 분명히 하는 역할이죠. ‘디렉터’ 맡은 친구는 대본에 따른 상황 설정을 이해하고 극적 효과를 더할 수 있는 소품, 음악 등을 연구합니다.”

연극 발표를 위해 친구들과 끊임없이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학생들은 생각의 폭을 넓힌다. 방산고 3학년 박재형군은 “사회 수업과 실제 뉴스, 신문기사를 연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졌다”고 했다.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몸을 움직여보는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연극을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고도 덧붙였다.

‘밀양 송전탑’ 등 사회 이슈도 다뤄

사회 과목의 경우 교과와 최근 이슈를 연계한 교육연극 수업이 가능하다. 특히 지역사회 문제를 연극에 접목해 진행하면, 학생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현상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구 교사의 수업에서는 ‘제2롯데월드 건설’, ‘밀양 송전탑’ 등을 소재로 놓고, 학생들이 이슈와 관련한 이해당사자가 되어 연극을 했던 적도 있다. 학생들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뒤 교통난 가중 문제를 겪게 될 ‘택시기사’, 기업 이익을 지키려는 ‘홍보 담당자’, 지반침하 현상을 우려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입장에 서보며 사건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경험을 했다.

구 교사는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따돌림 등 학교폭력 문제부터 새만금 간척사업 등 굵직한 주제까지 사회 곳곳 갈등을 교육연극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했다.

‘초등 연산’ 연극으로 쉽게 접하기도

초등 과정에서는 ‘수학 동화를 활용한 연산 개념 익히기’ 등 교육연극 활용도가 더욱 높다.

경기 서농초 박희정 교사는 “덧셈과 뺄셈 등 수학 기초를 다질 때 교육연극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이상한 수학나라’에 앨리스와 함께 초대받았다는 설정으로 1과 10 숫자가 되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연극 수업도 가능하다”고 소개했다.

“교사가 시계토끼 역을 맡고 학생들은 주인공 앨리스와 같은 편이 되는 겁니다. 아이들이 ‘5+3’, ‘7-4’ 등 문제를 내보고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답을 찾아냅니다. 예를 들어 숫자 ‘5’ 역을 맡은 아이는 카드 다섯 장을 들고 자리를 옮겨 다니는 연극 활동을 통해 계산 원리를 이해하게 되는 거죠. ‘주어진 문제’를 푸는 수동적인 학생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경험을 통해 수학에 대한 막연한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수업 주체 되는 시간

교육연극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도 수업에서 소외당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한 조는 5~6명으로 구성하는데 지적 장애가 있는 학생뿐 아니라 소위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까지 연극에서 자기 역할을 하나씩 맡는다.

과거 구 교사의 교육연극에 참여했던 교내 특수반 한 학생은 문화 상대성 수업에서 터키 전통춤을 멋지게 공연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구 교사는 “수업 마치면 소감문을 쓰게 하는데 당시 아이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고, 그 친구와 함께 공부하고 연극을 할 수 있어 기뻤다’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장기결석으로 ‘문제아’ 소리를 듣던 이아무개군은 현재 고교 3학년이 됐다. “연극 수업에서는 나에게도 ‘역할’이 주어졌다”며 “대사를 외우고 수업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 내가 속한 모둠이 발표를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같은 모둠 친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다시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차별 없이 함께 힘을 합쳐 수업하니까 학교생활도 재미있어졌고요.”

구 교사는 “연극은 아이들을 지적·정서적으로 성장시키는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교과 내용 분석해 친구들과 대본을 만들고 교실 무대에 서면서 아이들은 ‘차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웁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슈에는 각자 다른 입장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죠.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경험을 해보면서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이유 역시 체득하게 됩니다. 연극 자체가 시민교육인 셈이죠.”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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