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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국정원 대선개입 단죄’ 뒤집어버린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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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원세훈 선거법 위반 핵심문서 2건 증거안돼”

항소심 깨고 파기환송…유·무죄 판단 안해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걸린 사건으로 불려온 원세훈(64)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깼다. 대법원은 유무죄 판단을 내놓지 않았지만, 유죄 판결 근거가 된 주요 자료들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인정한 항소심 결과를 사실상 뒤집은 판결로 해석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6일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조직적 선거운동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의 상고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원 전 원장의 보석 신청은 기각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선거법 위반 유죄 판단의 핵심 증거인 국정원 트위터팀 직원 김아무개씨 보관 전자문서 2건(‘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두 파일에는 출처나 기재 경위가 불분명한 트위터 글과 계정 등이 담겨 있고, 김씨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도 있다”며 “심리전단 업무 활동을 위해 통상적으로 작성되는 문서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업무상 서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인터넷 댓글·게시글 및 국정원 직원이 시인한 트위터 계정 등은 증거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인터넷 댓글·게시글 2125건, 찬반 클릭 1214건 및 국정원 직원이 시인한 트위터 계정이 쓴 글과 이를 퍼나른 글 11만여건은 여전히 증거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증거로 인정한 글들을 바탕으로 유무죄 판단을 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돼, 정치관여·선거운동에 관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사이버 활동 범위가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와 피고인들의 주장과 증명에 따라 심리전단 직원들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범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법률심인 상고심이 심리전단 직원들의 사이버 활동이 정치관여 및 선거운동에 해당되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범위 판단을 파기환송심에 넘긴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앞서 조직적 대선 개입을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사실상 뒤집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울고법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2월, 대법원이 이번에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전자문서 2건에 있는 트위터 계정들로 작성된 글 등 27만4000여건을 분석한 결과,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선출된 2012년 8월20일 이후 국정원이 활발한 선거 개입 활동을 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박 대통령이 확정된 이후부터 민주당이나 문재인·안철수 경선 후보에 대한 비방 글이 급증하고 그 내용도 선거 쟁점에 대응되도록 바뀌었다”고 밝혔다. 정치 개입에 따른 국정원법 위반죄도 인정하고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사건을 파기하더라도 유무죄 판단을 하는 것과 달리 이번엔 명확한 판단을 회피했다. 사실관계 확정은 2심이 해야 한다는 이유인데, 일각에서는 상고법원 설립을 추진하는 대법원이 여야 어느 한쪽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부를 민감한 판단을 미뤄보자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눈치보기 끝에 나온 기회주의적이고 정치적인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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