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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황교안, ‘대선 댓글’ 원세훈 영장 청구 막고…채동욱 솎아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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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법무 장관 황교안의 행적

검찰 중립성 지켜야할 장관이

스스로 외풍되어

정권위기때마다 해결사로

세월호 구조 실패한 해경은

과실치사 혐의 적용 퇴짜

성완종 리스트 수사 때는

여당·보수언론 물타기 동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는 2013년 3월 취임사에서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안다’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해 “법무·검찰이 최근 국민께 실망드리는 모습을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라며 “소나무의 푸름을 가슴에 품고 국민이 공감하는 법무행정을 성실히 실천해 나간다면 국민의 큰 신뢰와 사랑을 얻을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2년2개월여간 그가 보여준 검찰·법무행정은 이런 말과는 사뭇 달랐다.

법부무 장관은 정치권력과 검찰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지켜주어야 하지만, ‘황 장관’은 다른 행보를 택했다. 정권의 정통성이 걸린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3년 6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하자, 그는 ‘법리 검토’를 빌미로 시간을 끌며 선거법 적용과 구속영장 청구를 막았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선거법 적용을 관철하는 대신 구속영장 청구는 포기하는 ‘절충’을 해야 했다. 그해 10월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초기부터 외압이 많았다. (법무부 장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그간의 과정을 폭로했다. 항소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원 전 원장은 법정구속까지 됐는데도, 황 후보자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사이 윤 전 팀장과 박형철 전 부팀장은 법무부 징계를 받은 뒤 각각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으로 좌천됐다. 그들은 지난 2월 검찰 인사에서도 ‘열외’ 취급을 받았다.

황 후보자는 이처럼 정권의 위기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2013년 9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데도 그는 상당한 역할을 했다. 채 전 총장이 의혹을 부인하는 가운데, 황 후보자는 감찰을 지시해 결국 옷을 벗게 만들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한 첫 사례다. 일부 검사들이 평검사회의를 소집하는 등 반발했지만, 그는 “(채 전 총장에게) 나가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부적절한 수사개입 논란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세월호 구조에 실패한 해경 123정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려던 검찰에 “법리 검토를 더 해오라”며 퇴짜를 놓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선사 쪽에 책임의 대부분을 돌림으로써 결국 정부의 구조 실패 책임론 차단에 나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왜 못 잡고 있느냐”고 질책하자 곧바로 검찰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 전력을 다하라”고 특별지시를 했고, 이에 검찰은 군까지 동원한 사상 초유 수색작전에 나섰다.

최근 박근혜 정부 핵심인사 8명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담은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서는 여당과 보수언론의 ‘물타기’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계좌 추적이나 통화내역 추적 등을 해야 할 텐데, 거기에 8명만 이름이 나오겠느냐. 수사를 하다 보면 저절로 여러 분을 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당이 ‘물타기’ 차원에서 수사를 촉구한 2007년 성 전 회장 특별사면 논란에 대해서도 검찰에 수사를 종용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또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빌미로 헌정 사상 최초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나섰다. 황 후보자는 청구인 대표로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나가 직접 변론에 나서기도 했다.

황 후보자는 대구고검장 때인 2010년 6월 기자간담회에서 “공안검사들이 정치적으로 판단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사건을 처리해 인사가 잘 풀린다는 항간의 오해는 제 명예를 걸고 사실과 다르다. 정통 공안은 정권 수호가 아닌 체제 수호를 위해 일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관으로서의 행보는 ‘보수정권 수호’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사나 정치 현실에 대한 황 후보자의 ‘인식’은 장관 때보다 검사 재직 당시에 더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한 바 있다. 2009년 용산참사를 두고는 농성자들의 불법·폭력성이 원인이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특히 황 후보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부산고검장 시절인 2011년 5월 부산의 한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검찰 인사를 ‘환란’에 빗대며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았다”며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됐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됐던 분”이라며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또 곱지가 않겠지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황교안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코드’에 충실하게 맞춰 검찰을 지휘해온 분”이라며 “그랬기 때문에 이 정부 최장수 장관을 넘어 총리 지명까지 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노현웅 이승준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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