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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현명하게 한 표 행사하는 법, 청소년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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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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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관위 민주시민교육

졸업식 날 한 무리의 학생이 모였다. 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졸업 뒤 한 달에 한 번 강남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회장은 김아무개군으로 정했다. 안 오는 사람은 벌금 만원, 십분 늦으면 천원을 내기로 규칙을 정했다.

첫 모임날 이아무개군이 5분 지각했다. 한 친구가 이군에게 5분 늦었으니 500원을 내라고 했다. 이군은 10분 늦었을 경우 벌금을 물기로 했으니 그 전에 오면 봐주는 게 맞다며 돈을 낼 수 없다고 했다. 모임에서 그 법(규칙)에 대해 분쟁이 생겼다.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관이 있다면?

이황희 헌법연구관은 위 사례를 이야기하며 “이런 분쟁을 해결하는 곳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라고 말했다. 지난 2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헌재 대강당에 대학생 90여명이 모였다. ‘현대 한국정치의 이해’라는 과목을 신청한 경희대·국민대·동국대·숙명여대 학생들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기획 아래 서울시선관위가 운영하는 대학생 학점인정 과정이다. 학생들은 이번 학기에 헌재 외에도 외교부·선거연수원·국회의사당·입법조사처 등을 직접 방문해 특강 및 현장 체험학습을 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이날 헌재가 언제 생겼는지부터 헌법소원(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에 의하여 기본권의 침해를 받은 사람이 직접 헌재에 구제를 청구하는 일)과 위헌법률심판(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가를 심사하고 판단하는 것) 등 헌재의 구실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이 수업에 참여한 동국대 신승아(정치외교학과 4)씨는 “공대 같은 경우 참여 실습 프로그램이 많은 데 반해 사회과학 계열은 상대적으로 프로젝트나 실습 프로그램이 적은 학교가 많다”며 “이 프로그램은 현장 실습 위주로 짜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듣게 됐다”고 말했다.

입시경쟁과 취업준비에 치여
청소년·대학생에게 ‘정치’는 먼 얘기
선관위, 미래 유권자들 위해
정치 참여 관련 프로그램 마련
헌재·외교부 등 직접 가서 강의 듣고
사전투표 체험하며 선거제 접해
성인 되어 자기 권리 잘 행사하길


특강이 끝나고 이어진 이 연구관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최근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온 듯 ‘대법관 선출 과정의 문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동성결혼 합법화’ 등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 국민대 김홍균(정치외교학과 4)씨는 “학교 강의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도 영향을 끼치고, 책에 나온 한정된 정보만을 다룬다”며 “헌법연구관과 대법관 선출·임명 방식이나 판례 연구 등을 이야기하며 헌재도 우리가 품었던 의문점이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연수원에서 이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이른바 ‘삼포 세대’라 불리는 대학생들이 알바에 취업 준비까지 정신없는 상황에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초·중·고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인 민주시민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다. 교과서에 나온 정치나 선거제도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암기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이 성인이 된 뒤 투표권이 주어진다고 갑자기 정치의식이 생길 리 없다.

서울시선관위 김남이 홍보과장은 “조사해보면 20대 정치참여도가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며 “진로나 취업에 치여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건 사회·경제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젊은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제도화되려면 본인 스스로 자기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은 표가 안 나오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치참여는 고유한 의무이자 권리다.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바꾸고 민주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연수원은 이런 취지로 대학생뿐 아니라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25일에는 서울 은평구 연신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청소년 리더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용재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는 3~6학년 학급 임원과 전교어린이회장단에게 ‘실천하고 참여하는 미래 유권자’를 주제로 강의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선거제도에 대해 알려주고 직접 투표에 참여할 시간도 줬다.

학생들은 지난 2010년 방영된 문화방송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극중 초등학생인 해리가 반장 선거에 나서면서 친구들에게 음식을 사주고 자신을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봤다. “내가 반장이 되면 매일 우리 집에서 갈비를 먹여주고, 방학 때는 미국의 디즈니월드를 보내주고 시험도 다 없애줄게.”

이 교수가 “해리가 결국 반장이 됐을 거 같냐?”고 묻자 아이들은 일제히 “아니요”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친구들에게 분식을 사주며 부정선거를 해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학생들은 자신이 얘기했던 공약을 바탕으로 ‘신나는 학교를 위해 꼭 지켜야 할 약속’도 꼽았다. 모둠별로 각각 돌아가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 뒤 토론을 거쳐 다수결로 결정했다. ‘일주일에 두 번 먼저 나서 복도 청소를 하겠다’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반을 만들겠다’ ‘혼자 노는 친구 없는 반을 만들겠다’는 등 대부분 본인들이 지킬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이날 도서관 뒤편에서는 사전투표 체험도 진행했다. 학생들은 실제 선거 때처럼 임의로 만든 신분증을 받아 본인 확인을 거쳐 기표소에 들어갔다. 이후 본인이 뽑고자 하는 후보자 이름 옆에 도장을 찍고 기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다. 학생들은 흥미로워하며 한 줄로 서서 투표를 했다.

5학년 정예나양은 “이런 수업은 처음이다. 투표를 직접 해보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내가 귀찮다고 투표를 안 해서 이상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면 국민이 불만이 생기고 나라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직접 뽑은 임원이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것처럼 투표하는 사람이 (대표자를) 제대로 뽑는 것도 중요하다.”

이 교수는 “스웨덴은 학생이 직접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선거 때 투표도 한다”며 “입시 경쟁에 치여 아이들이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적고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인이 돼서 갑자기 참여하라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 그 능력을 단계적으로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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