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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같은 '1인 시위'인데… 일반 시민은 막고 국회의원은 허용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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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 헌재 앞 '장외 여론전' 총력
집회 아닌 1인 시위·기자회견이라지만
"음향기기·구호 있었다면 집회" 판례도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가 탄핵 찬반 시위를 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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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벌어지는 '1인 시위'나 기자회견에 대해 일반 시민과 국회의원에게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자 최근 헌재 주변 경비 태세를 크게 강화하며 일반 시민들의 '1인 시위'를 봉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1조'는 각급 법원이나 헌법재판소 100m 이내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2조는 집회·시위를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1인 시위나 기자회견은 집회·시위에 해당하지 않아 경찰이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런 점을 이용해 그동안 헌재 앞에선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등이 1인 시위를 표방한 사실상의 집회·시위를 했고, 경찰도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21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다 이마에 날계란을 맞는 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은 헌재 직원이나 취재진 등을 제외한 일반인은 이 일대를 지날 수 없도록 통행 자체를 막았고, 자연스럽게 1인 시위도 할 수 없게 됐다.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바리케이드가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 박시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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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국회의원들의 손팻말 시위와 기자회견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오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은 헌재 정문 앞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신속파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불의"라며 탄핵심판 선고기일 지정을 촉구했다. 전날인 25일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 12명이 이곳에서 '탄핵 촉구 릴레이 기자회견'을 했고, 바로 뒤 나경원, 조배숙 등 국민의힘 의원 10여 명이 같은 장소에서 마이크를 잡고 탄핵 반대 기자회견에 나섰다.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김정재, 김미애 의원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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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당은 기자회견 장소 바로 옆에서 '릴레이 시위'도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주로 현역 의원과 당직자들이, 국민의힘은 당협위원장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1인 시위를 한다. 무늬만 '1명'인 일종의 '꼼수 시위'다. 24일엔 모경종 민주당 의원이 "꼼수다, 꼼수. 이게 국민의힘 수준"이라고 비아냥대자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민주당 수준이나 돌아보라"며 서로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일반 시민의 시위는 막고 의원들에게만 개방한 셈이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일선 경찰 관계자는 "집시법의 범위에 해당되며 경찰에 신고된 집회는 (경찰이) 관리하지만 (기자회견 등) 그 외에 대해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명했다.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 설치된 경찰 차단벽과 바리케이드. 남동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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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이 시민단체에 대해선 정반대 기준을 적용해 처벌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1월 부산동부경찰서는 '소녀상을 지키는 부산시민행동' 등 시민단체 대표 2명을 집시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단체들은 "지금껏 100번 넘게 열었던 기자회견"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집회로 판단했다. 이 행사가 열렸던 곳은 일본총영사관 인근으로, 헌재와 마찬가지로 집시법상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외교기관'에 해당한다.

외형상 기자회견 형식을 갖췄더라도 집회에 해당할 수 있다는 대법원 결정도 존재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산하 단체 사무국장 A씨는 2014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따르지 않아 벌금형을 받았다. A씨는 "집회가 아니라 기자회견이었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하지만 2심은 △마이크 및 음향시설이 갖춰져 있었고 △현수막을 펼치고 일부 참가자들은 손팻말을 들었으며 △경찰의 제지에도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 판결은 2년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자칫 '금배지 특혜'로 비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더욱 공정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말로는 기자회견, 1인 시위라면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면 위법·편법 소지는 충분하다"면서 "대법원 판례까지 있다면 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짚었다.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국회의원이 개인 또는 정치인 신분으로 온 것인지 '헌법기관'의 자격으로 온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전자의 경우) '왜 이들은 가능하고 일반 국민들은 불가능한가'라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박웅 코리아타임스 기자 parkung@korea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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