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상법 개정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될까? [기고]

0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근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확대하여 기존의 '회사' 중심에서 '회사 및 주주'로 의무 대상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 투명성을 제고하고, 소액주주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개정안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개정안이 통과된 배경에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상,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글로벌 경쟁사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낮은 주주 환원율, 과도한 규제, 높은 상속세 등 다양한 요인에서 기인한다. 개정안은 이사의 책임을 강화함으로써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법적 의무를 강화하는 방식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는 주주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모든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하지만, 주주들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 있다.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와 장기적 성장을 중시하는 기관투자자 간의 갈등,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 대립 등이 대표 사례다. 이사가 이러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경영 판단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오히려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경쟁력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강화가 소송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소액주주들은 이사의 의사결정에 불만을 제기하며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기업이 법적 분쟁에 휘말려 정상적 경영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나 투기적 자본이 이 같은 법적 장치를 이용하여 기업을 압박하고,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업을 움직이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이 한국 기업을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 대상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이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하며, 대주주 할증을 포함하면 최대 60%까지 상승한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며, 경영권 승계를 어렵게 만들어 기업의 장기적 가치 창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상법 개정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의 성장 투자와 연구개발을 활성화하는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주주환원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강조하고 있으나, 주주환원만으로 지속적 성장을 담보할 수는 없다. 기업이 신사업에 투자하고 연구개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창의적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상법 개정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긍정적인 취지를 갖고 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법적 의무 강화보다는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규제 완화, 상속세 개편, 연구개발 지원 등의 병행 정책이 없다면, 개정안은 오히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책 입안자들은 단편적인 해결책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일보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 회장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