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서울 본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남구 |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장갑차 등 군사장비와 화약을 생산하는 한화 계열 방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20일 우리나라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인 3조6천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이날 공시를 하기 전 거래에서 4.5% 떨어진 주가는 21일 13.02% 더 떨어졌다.
이 회사 주가는 지난해 말 40만원에서 올 들어 3월18일(76만4천원)까지 91%나 올랐다. 3월 들어 20일까지 816만주가 거래됐는데, 이틀간의 급락으로 21일 종가가 62만8천원으로 떨어지면서 3월에 주식을 산 투자자 대부분이 손실을 보게 됐다.
한화에어로는 발행주식의 12.2%에 해당하는 595만여주의 신주를 발행해, 우리사주조합 우선배정분 20%를 제외한 나머지를 4월24일의 주주에게 1주당 0.1주씩 배정한다. 신주 발행가격은 ‘유가증권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 조달한 돈은 시설 투자에 1조2천억원을 쓰고, 2조4천억원은 타 법인 증권을 사는 데 쓰겠다고 한다. 법을 어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들을 등친 것 아니냐고 분노한다. 유상증자를 하면 회사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는 자본금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소액주주들에게 득 될 게 없고, 주가만 급락한다는 점이다. 한겨레가 지난해 들어 11월까지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한 50개 상장사 주가를 살펴보니 49곳이 공시 뒤 첫 거래일에 주가가 떨어졌는데, 평균 하락률이 17.6%나 됐다.
주식투자자들은 그 이유를 안다. 회사가 증자를 한 뒤 높은 수익률로 주주들에게 보답할 것이란 기대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주식 가치만 희석된다고 우려한다. 투자자들이 증자 참여를 회피하려고 앞다퉈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주가는 폭락한다.
한화에어로 증자의 경우 고약한 면도 있다. 우선 주가가 큰폭 오른 시점에 증자를 결의한 것이 주주들을 화나게 한다. 또 3조6천억원이란 거액을 모으는 데, 그룹 ‘총수’인 김승연 회장이나 그의 장남 김동관 한화에어로 대표는 한푼도 내지 않는다. 33.95%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한화가 돈을 낼 뿐이다.
한화에어로는 지난해 전년도의 2.9배인 1조7319억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의 영업이익을 냈다. 증자를 공시한 20일 시가총액은 32조9096억원으로 그 19배였다.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이 배율은 향후 영업이익이 더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주가에 반영돼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한화에어로가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의 용처가 투자자들에게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타 법인 출자 계획에는 해외 조선소 확보에 8천억원을 쓰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외 방산 생산능력 구축이나 조인트 벤처 지분투자가 2029년까지로 계획돼 있는 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한화에어로는 앞서 지난달 10일 다른 계열사가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 7.3%를 1조3천억원을 들여 매입하기로 했다. 김동관 대표의 계열사 지배력을 높일 뿐, 회사 실적에 도움 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면서 주주들에게는 통 크게 손을 벌리니 실망이 더 크다.
지난해 11월8일 이수페타시스가 5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결의를 공시하면서 ‘유상증자 폭탄’은 본격 이슈화됐다. 이어 현대차증권이 발행주식의 95%에 이르는 2천억원의 증자를 결의해 불을 키웠다. 올 들어서는 지난 14일 삼성에스디아이(SDI)가 2조원 규모 증자를 결의했고, 한화에어로가 그 뒤를 이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이수페타시스와 현대차증권의 증권신고서 보완을 요구하며 몇차례나 제동을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는 삼성에스디아이와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를 ‘중점심사’ 1, 2호로 선정했는데, 이복현 원장은 21일 “케이(K)방산의 선도적 지위 구축을 위해 유증을 추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화에어로의 유상증자 결의를 계기로 상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유증 폭탄’을 막으려면,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 과반수의 찬성을 얻도록 하거나, 반대하는 주주의 주식을 환매해주는 게 이상적이지만, 최소한 국회에서 의결한 상법 개정안에 담긴 대로 ‘이사가 지배주주만이 아닌 모든 주주에게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장’ 투자자들은 그동안 하도 ‘유상증자를 많이 당해’ 뒤통수가 다들 시퍼렇다. 상법 개정안을 손에 쥐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주 잘 알 것이다.
jeje@hani.co.kr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