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 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1월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관저 인근 ‘노동자 시민 윤석열 체포대회’ 농성장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신속 체포 촉구 긴급 기자회견’에서 은박 담요를 둘러쓴 시위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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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파면과 민주주의 회복을 외쳐온 광장이 19일 고비를 지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탄핵 선고 일정은 이날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거리에는 예기치 못했던 극단적인 혐오가 넘실댄다. 12일째 단식 농성을 벌였던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진영종·정영이 공동의장은 이날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다시 민주주의’로 향하는 진통 앞에, 말빛 이지완(31)씨와 그가 꼽은 광장의 말들을 소개한다. 휴직 중인 직장인 이지완씨는 ‘말빛’이라는 활동명으로 크고 작은 집회 무대에 선 시민의 말들을 기록한다. 이를 엑스(X·옛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 올린다. 분량이 너무 길어서, 발언자들이 너무 많아서, 집회가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열려서 흩어지고 마는 광장의 말들을 모아 전한다. 그 말들은 이씨의 선생이자 버팀목이다. “분노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점점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발언들로부터 얻는 힘으로 집회에서 밤새 버텼습니다.” 다른 시민에게도 그러리라 믿는다.
말빛의 기록 원칙은 이렇다. △작고 소외된 집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당하는 목소리를 먼저 기록한다. △현장에서 직접 발언을 수집한다. △녹음을 문장으로 변환해주는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다. 천천히 광장의 말을 체득하며, 언론조차 놓치기 쉬운 소외된 말들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빛이 그렇게 새긴 ‘광장의 말’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 5개를 꼽아 한겨레에 전했다. 그 전문을 싣는다. 더 많은 광장의 말들은 말빛 인스타그램(@shiningwords__)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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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일, 한강진역,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 집회
발언자: 익명의 청년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좀 깁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겨울에 서른이 된 시민입니다. 조금은 침울한 소개가 되겠습니다만,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길게 이어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스스로 벌어 먹고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동등하게 살 자격을 얻었다고 느낀 적 없습니다. 저는 주저앉혀지는 것이 익숙합니다. 맞으면 엎드리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조용히 있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습니다. 그것이 관성이 되어 저는 지금도 누워 지냅니다.
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휘청거릴 때 손잡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혼자 목소리 낸다고 해서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제 얘기를 하면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네가 모자라고 게을러서 그런 거 아니냐. 모두 그 정도는 견디고 사는데 왜 너만 못해? 네가 더 노력해야 돼. 네가 틀렸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
평범하지도, 정상적이지도 못한 사람, 그리하여 생산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로서 죄가 됩니다. 사회의 짐이자 장애물일 뿐입니다. 이런 저는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요. 마음에 드는 깃발 아래 설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도 아니고, 응원봉을 들 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저를 외면했듯, 저도 세상을 외면하고 싶습니다. 사랑도, 연대도 막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아까운 청춘이라고 말했던 20대를 죄다 낭비한 뒤 작별하는 문턱에서 저는 이곳에 나와 있습니다.
왜일까요? 지난날, 젊은 애들은 나태해서 국가에게 돈 달라고 요구나 하러 시위 다닌다는 가족의 모욕을 듣고 뛰쳐나와 남태령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양곡법이 무엇을 보장하는지, 농민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인지했습니다. 그걸 발단으로 저는 매일 집 밖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서울교통공사의 자의적인 철도안전법 조항 해석 아래 불법 단체로 낙인 찍히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함께합니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마치 귀찮은 청소를 하는 듯한 태도로, 불법 시위자는 시민이 아니라는 말로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간이 평등할 권리, 평등하게 이동하고 노동하고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서울시장과 서울교통공사에게 저항하는 운동가들을 비인간화하며 무력 진압합니다.
매주 수요일,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시위가 열리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 피해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이루어졌던 한일 합의를 준수한다는 핑계로 일본 정부에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을 책임을 회피해왔습니다. 심지어 일본 정부와 기업을 한국 정부가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제3자 변제안으로 전쟁 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명동역 10번출구 세종호텔 앞에서 부당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복직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호텔은 10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종호텔을 위해 헌신해온 노동자들,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원들을 골라내 부당하게 정리해고하였으나, 대법원이 그 해고는 정당했다며 지난달 확정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4.16연대 박승렬 공동대표님이 4.16 10주기 기념 문화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눈물 흘리지 않고 서로 위로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법적 토대, 생명안전기본법을 쟁취하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제주항공 2216편 추락 사고가 일어나기 4일 전인 12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동덕여대에서는 비상식적인 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는 학과 통폐합과 공학 전환이라는 중대 사안을 학생과 소통하지 않은 채로 일방적, 강압적으로 진행했으며, 학생들이 요구했던 교내 안전 조치를 사망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취하지 않았고, 터무니없는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학생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합니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금도 노조할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지금, 공권력보다 든든한 우리의 금속노조, 그 조합원 동지가 곡기를 끊고 4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이 손해배상 소송으로 노조를 탄압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노동조합법 2, 3조를 개정해 더 촘촘하고 정확한 범위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3일 서울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3번 출구에서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열고 ‘윤석열 체포 1박2일 집중 철야투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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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부끄럽게도 이제야 이들의 이야기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가 전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동덕문화예술관에 ‘어떤 시위도 불법이 될 수 없다’고 적힌 스티커를 함께 붙였고, 민주노총 차량은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의 행진에 ‘함께 갑시다’라는 말과 함께 ‘프리프리 팔레스타인’이라는 구호를 선창하고, 거통고조선하청지회 투쟁문화제에서는 장애인 동지와 연대하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전장연의 ‘열차 타는 사람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A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공익 제보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전보 당한 지혜복 선생님이, 이동하고 싶은 장애인과 고공 농성하는 노동자와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집회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저는 자신합니다. 집회에서 발언하는 시민들과 단 한 번이라도 인간으로서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요구가 부당하거나 이기적인 것이라고 쉽게 낙인 찍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는 그저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몰랐을 뿐입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사실 궁극적으로는 맥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권력에 의해 주저앉혀지고 싶지 않아 투쟁합니다. 이건 당연하게도 파시즘을 앞세운 지도자를 거부하는 일과 같습니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면당한 이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비민주적인 결정 아래 배움터를 위협당하고 있는 여대 학생들, 자신을 입증할 필요 없었던 사람들이 정한 규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가해자를 벌 받게 할 수도 없는 여성 폭력의 피해자들, 미미한 지원금만이 쥐어진 채 삶의 터전을 철거당한 용주골 사람들, 시설과 집안에 갇혀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 철저한 외부인으로 배척당하는 이주자들, 불합리한 정부의 명에 항명하고 고문당한 군인,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 위험한 환경에 내몰려 목숨이 부품처럼 쓰이고 있는 노동자, 국가의 식량자급률을 책임지는 주체임에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농민, 무책임한 정부의 대처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 정치적 주권을 존중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지정받은 성별을 거부하는 트랜스젠더, 부름 받거나 분류되지 못하는 논바이너리,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일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아예 사랑하고 싶지 않은 다양한 성적 지향자들, 국제 사회의 외면 아래 학살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죽어가고 있다고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모든 비인간과 생태계,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타자화되고 비인간화된 채로 착취당하는 모든 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의 폭거와도 같은 정치 행보 안에서 저희 중 대다수는 희생양에 지나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이 더 잃으며, 잃은 사람이 잃은 사람의 멱살을 잡고 콩고물의 주인을 가리기 위해 싸웁니다. 이런 세상은 살아남아도 비참합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우리에게 닥쳐 왔죠.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면, 저는 산 자가 살아갈 자를 구할 수 있다는 말 또한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죽도록 견디고, 흠을 감추고, 폭력에 순응하고,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야 하는 삶 따위 그 누구에게도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매 순간 삶과 투쟁해야 하는 삶 따위는 이곳에서 끊어내고 싶습니다. 모두 더는 투쟁하지 않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살고 싶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거리를 가장 먼저 채운 건 저와 제일 닮은 사람들입니다. 민주 사회의 시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곳에서 주권자가 될 수 없었던 우리 모두. 모두가 모두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서로 섞일 수 없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교집합이나 여집합에서 만났습니다. 각자의 영역만을 지키며 외롭게 투쟁하지 않고 교차되는 길에서 만나 같이 갑니다. 우리는 서로의 일부입니다.
앞서 발언해 주신 분이 언급해 주신 전태일 열사의 말처럼요. 저는 알바를 구하다 아빠뻘의 남성에게 성희롱을 당한 여성이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동안 몸만 멀쩡한 병신이라고 모욕당한 장애인이고, 해외에서 휴게시간과 최저 시급을 보장받지 못하고 취업할 뻔했던 이주노동자고, 2030 여성과 2030 남성 바깥에 있고 싶은 통계 밖의 성 소수자고,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허리뼈에 금이 가서 차라리 쿠팡이라도 가라는 말에 몸서리치는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경력자를 박대하는 병원의 인력 운용 때문에 역할 밖의 노동을 해야 했던 파견근로노동자이고, 정상성을 강요하는 공간을 견딜 수 없어 도망쳐 나온 학교 밖 청소년이었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할 수 없는 처지였던 가정폭력 피해 아동이었고, 반기후적인 세상에 저항해 왔지만 집에서는 고기 먹길 강요당하는 채식 지향인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일부를 합친 것이 저입니다. 제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들이 가해진 폭력으로, 멸시해 마땅한 편견으로, 꺾을 수 없는 신념으로, 체념하는 습관으로 저를 이루고 있어요. 제 것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제 것이 되어 있기도 하지만 저는 절 이루고 있는 것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당사자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언제나 개별 존재에게만 할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혐오는 불처럼 번지기 쉽습니다. 가장 낮은 자에게 보장된 안전은 어느 누구에게나 벼랑으로 떠밀렸을 때 몸을 받아주는 안전망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은 여러분의 일부이니까요. 저를 미워하지 않을 사람들을 이 광장에서 만나 저는 이제야 이 참혹한 세상을 사랑할 용기가 납니다. 저는 저의 일부를 불러주는 깃발 아래에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약자성, 소수자성, 다양성을 포용하는 움직임의 주체가 된 이후로 이곳의 모든 깃발에서 안도를 느낍니다. 오로지 국가만이 뒤늦게 따라오고 있을 뿐, 저희는 입법, 사법, 행정에 이미 앞서 서로의 아픔과 나아갈 방향을 이해하는 민주 사회 안에 있습니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와 국가 폭력의 피해자가 아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항과 생각이 무용한 세상에 길들여졌던 삶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항도 생각도 희망도 사랑도 무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외로운 사람들 곁에 있을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외로운 사람으로 혼자 있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세요.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저희의 집이 되는 날까지 지치지 말고 갑시다. 마무리는 투쟁이 아닌 잠시 묵념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월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9차 범시민대행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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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일, 광화문,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9차 범시민대행진
발언자: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안녕하세요. 저는 오래전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민이고,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다야 라이라고 합니다. 지난 12월 3일, 내란범죄 비상계엄이 실시되었을 때, 260만 이주민들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한국말을 못한다고, 차별받고 혐오 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일이 더 많아질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이주민에게 지난 수십년간 헌법은 정지 상태였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들이 정당화되어 왔습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사장의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을 마음대로 못하고, 강제노동하고 있습니다. 결혼 이주민들은 체류 사정이 불안정하고, 이혼하면 비자 연장이 어렵습니다. 2만명이 넘는 미등록 아이들이 체류권이 보장되지 못해서 미래를 꿈꿀 자유도 없습니다. 이주민 차별, 여성 차별, 이중, 삼중 굴레 속에 이주여성들은 살고 있습니다.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로 희생된 23명 노동자들 중에 18명이 이주노동자이고, 대다수가 중국 동포들이었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위험한 일을 더 많이 하고, 더 많이 죽습니다. 이제 위험의, 죽음의 이주화를 멈춰야 합니다. 인구가 부족하고 노동력이 부족하고 지역이 소멸된다고, 정부와 사회가 필요하다고 해서 왔는데, 왜 아무 관리도 없고 시키는 대로 일만 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이주노동자들은 노예도 아니고 기계도 아닙니다. 여기서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이주민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 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혐오 세력들은 외국인 혐오, 반중 혐오 정서를 조장하면서 폭력까지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고 거부합니다. 광장에 이주민이, 이주노동자가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며, 민주주의를 위한 연대(에서) 극우 혐오는 설 자리가 없어야 합니다.
지난주, 이주민 기자회견에서 미얀마, 이집트, 필리핀, 네팔에서 온 이주민들이 본국이 겪는 독재와 쿠데타 경험을 이야기하며 ‘계엄에 공포를 느꼈다’, ‘광장에 희망을 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퇴진을 넘어 다시 만날 새로운 세계에는 세계 이주노동자, 이주민의 자리가 동등하게 있어야 합니다.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곳에, 살아가는 공간에서 자유와 정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와 평등이 이뤄질 것입니다. 더이상 억압과 차별에 굴하지 맙시다. 평등 사회를 위한 노동자·시민의 투쟁에 이주민도 함께하겠습니다. 투쟁! 감사합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2월1일 서울 종로구 한화오션 서울사무소 앞 농성장에서 열린 ‘연대투쟁호’ 현판식에서 민중가요 ‘쇳밥’을 부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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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통영지방법원 앞,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투쟁문화제
발언자: 김형수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장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하니, 이대로 죽으라고 등 떠미는 세상입니다. “차별을 철폐하라” 하니, “희망을 버리라” 하는 세상입니다. 월급 받을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의 존재는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되어 버렸습니다. 옆에서 일하는 정규직을 보며 부럽기보다는 작아지는 자신이 스러워집니다.
두꺼운 철판 위를 걸어 다니지만, 현장의 안전은 살얼음판입니다. 어제 죽은 동료가, 지난달에 죽은 옆 회사 노동자가 사용하던 장비는 이름표만 바뀐 채, 또 누군가의 손에 들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쉼 없이 돌아갑니다.
현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정확히 일할 시간과 밥시간 쉴 시간을 알려 주지만, 우리 하청노동자의 인생은 정확한 것 하나 없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아끼면 잘 산다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얘기는 이미 옛말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아끼면 모두가 죽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일하러 태어난 인생인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래서, 벗어나 보려고 회사에 요구했습니다. 최소한 같은 일 하니, 차별하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그럴 능력도 없고 불만 있으면 그만두라고 하고, 원청은 뻔뻔스럽게도 남일 보듯 합니다.
작업 거부하니 불법이라 해서, 파업권 가져오니, 남일 보듯 하던 원청이 자기들 공장에서 파업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 배 만드는 일은 하청노동자 시켜 만들면서 파업은 다른 곳에 가서 하랍니다. 그럼 일하러 배에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니, 그건 하청업체 대표한테 가서 얘기하랍니다. 앞뒤 맞지 않은 얘기하지 말라고 하니, 법이 그렇답니다. 그래서, 국회 찾아가고 밥 굶어가며 법 바꾸라고 했더니, 대통령이란 작자가 거부합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에겐 민주도 자유도 노동자의 권리도 없습니다. 그저 오늘 마무리 지어야 할 일과 아픔 몸뚱이 뿐이고, 노동조합 사무실 외벽에 걸린 깃발은 우리네 인생처럼 너덜너덜 해어진 채 나부낍니다. 그래도, 거제도 바닷바람은 하청, 정규직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불어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화오션의 흑자 소식, 돈 잔치에 하청노동자는 상여를 메지만, 10년 전 생각하면 그래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2016년 조선업 위기에 소리소문없이 수만 명의 하청노동자가 찍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공장을 떠났을 때, 인생을 비관해 바다에 몸을 던진 노동자의 시체가 바다에 떠오르고 상담받으러 왔던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던 배 안에서 목을 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이제는 하소연할 곳이라도 있다는 생각에 노동조합 만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원은 그 노고를 치하 하듯 우리에게 범법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주고 우리는 오늘 이렇게 법원 앞에서 밤을 세웁니다.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을 거리에서 잠을 자고 얼마나 더 많은 경찰의 부름과 검찰 법원의 등기를 받아야만 변할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되었을 때 느끼게 될 기쁨과 환희를 생각해 보면 그 부름과 법원 등기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라 생각하겠습니다. 이곳에 함께하고 계신 모든 동지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태은 요지경 밤톨우리 밀포 주드
칠공이 사저 현랑 레어 명지 사천당문
박수연 범깡총연대 피린 박시현 양동민 밀크푸딩 붓다 해인 라도반 소수윗 파르페 하이 샤샤 루나틱 듀선생 맘마 광고판 세진 이슬…
우리 말벌동지들 고맙습니다. 그대들이 있어 서울 투쟁 행복했습니다. 일일이 호명하지 못한 모든 말벌동지들 고맙습니다.
언젠가 바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갑시다.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처음 모여서 외쳤던 우리의 구호처럼 우리가 뭉쳐서 세상을 바꿉시다. 감사합니다. 투쟁!
\'\'3·8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학생들에게 장미꽃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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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세종호텔 앞, 여성파업대회
발언자: 샤샤(말벌 시민)
안녕하세요. 샤샤라고 합니다. 말벌 동지로 불려왔지만, 사실 저도 말벌 동지가 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대신 부모가 없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노동자로서 이 자리에 서 보려고 합니다. 제가 겪은 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최대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스무살에 집을 나왔습니다. 맞아 죽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었습니다. 청소년 쉼터에 갔지만 거기에 트랜스젠더를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든 심신을 이끌고 나와 통장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는 중졸의 무경력자를 받아주는 일터를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뷔페는 그런 저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고시원 월세를 내야 하니 힘들다고 그만두지도 않고, 바쁜 명절에 집에 가지도 않으니 계속 출근하고, 학력이 없으니 최저임금만 줘도 되는 아주 좋은 노동자였습니다.
제게도 뷔페는 아주 좋은 직장이었습니다. 일단 밥을 줍니다, 그리고 밥을 줍니다. 물론 탈의실을 못 쓰게 해서 남들이 다 퇴근하면 조리복을 갈아입기도 했고, 정직원 기분에 따라서 입술 색을 바꿔야 하기도 했고, 내일부터 출근해달라고 근로계약서를 썼던 사장이 ‘우리 직원이 트랜스젠더랑 일하기 싫으니 나오지 말라’고도 했지만 굶어 죽을 걱정 안 해도 되는 유일한 직장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만족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의 날이 저에게 지은 죄가 참 많습니다. 저는 빵만 먹으면서 잘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빵과 장미라는 말을 알려주는 바람에 제 존엄성까지 챙겨야 하는 삶을 살게 되어버렸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 좋은 환경에서 존엄성을 챙기면서 일하고 있지만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포기해야 하게 됩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사람답게 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남자가 돈을 벌어오면 여자는 집을 보고 가정과 나라가 평화로워진다는 신화 속에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 신화대로 노동하다가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 신화대로 가사 노동하다가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한 가정폭력 생존자들이 있었습니다. 돈을 벌어올 능력도 없어서 일인분 취급도 못 하는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휼륭한 여자와 남자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다가 탈락자 취급을 당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투명인간으로 사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저이고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성들만의 노동운동에, 부르주아들만의 여성운동에 이상함을 느낀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서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되었듯, 오늘에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오늘 모여 2025년 3월 8일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앞에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또 수많은 이름으로 함께 싸우고 혼란스러워하고 충돌하면서 함께 나아갑시다. 투쟁!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십자각 일대에서 연 ‘100만 시민 총집중의 날’ 집회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인근 건물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즉각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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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3일, 광화문, 세종호텔 공대위·A학교 공대위·거통고 조선하청지회 투쟁 3단위 공동주최 오픈 마이크
발언자: 야생맘마먹음이보존협회(말벌 시민)
얼마 전에 교육청에서 연행됐고, 오늘 아침에 검찰에서 스티커 두 장을 붙인 죄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된 맘마 동지입니다. 사실 어제도 저희가 이 자리에서 오픈 마이크는 아닌데, 그런 구호들을 외쳤어요. 반도체특별법 폐기하라!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하라! 노조법 2·3조 즉각 개정하라! 그런데 이렇게 외쳤더니 이게 방해라고 하고,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폭도가 되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면 미움밖에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할 순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순서를 기다리다가 죽은 노동자가 몇인 줄 아십니까?
얼마 전에 간 고 황유미씨의 추모대회에서 영상이 나왔거든요. 혹시 여기서 영화 보시면 엔딩 크레딧 끝까지 보시는 분 계신가요? 저도 끝까지 보는데 정말 많은 사람의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그 이름이 끝도 없이 올라갔습니다. 차마 다 못 볼 것 같아서 고개를 잠깐 숙였는데, 다시 들었을 때도 영정사진조차 없는 그 죽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대체 몇 명이 더 죽어야 말할 수 있는 순서가 오는 겁니까? 언제가 되어야지 나중이 아닌 지금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살려달라는 말이 어떻게 순서를 지켜 나올 수 있습니까? 살고 싶다는 말이 어떻게 조용해질 수 있습니까?
거제의 조선소에서는 또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심장이 아프다고, 심장이 아프다고, 심장이 아프다는 노동자를 탈의실로 보내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그 탈의실에서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조선소에서는 끝없이 폭발 사고 때문에, 끼임 사고가 있어서, 추락해서 노동자가 죽고 있습니다. 이 외침을 김진숙 동지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살고 싶다고, 더 이상 죽기 싫다고. 쿠팡에서는 도대체 몇 명이 더 죽어야 하고, SPC 공장에서는 몇 명이 손이 잘려야 우리 순서가 오는 겁니까. 어떻게 우리한테 순서를 어떻게 지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거통고 동지들이 서울에 온 지도 65일이 되었습니다. 우린 도대체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합니까? 언제까지 반도체, 반도체가 그렇게 잘난 이 국가에서 반도체 때문에 죽는 노동자가 몇이나 더 나와야 우리는 우리를 죽이는 위험 물질이 그게 도대체 뭔지라도 알 수 있게 되는 겁니까? 도대체 몇 명의 트랜스젠더가 더 죽어야 우리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 도대체 몇 명의 발달장애인이 더 죽어야 감옥이 아닌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까?
우린 도대체 어디에서 이 말을 외쳐야 들어주겠습니까? 일터에서 외쳤습니다. 일터에서 외치다가 안 되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모든 게 있어서, 국회가 있어서 왔습니다. 국회 앞에서도 외쳤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료가 죽은 그곳에서도 외쳤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워서일까요? 내가 이렇게 울면서 감정에 호소해서 그렇습니까? 내가 금배지가 없어서, 내가 그냥 시민이라서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겁니까? 도대체 어떤 언어로 얘기해야지 우리는 살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는 거라고 요즘 매일 느낍니다. 나는 운이 좋아서 여성으로 범죄를 당하지 않았고, 나는 운이 좋아서 쿠팡에서 일했어도 죽지 않았고, 나는 운이 좋아서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도 죽지 않았다. 나는 저 모든 외침이 지독히도 폭력으로 들립니다. 조명 하나 없고 스피커 두 대에 의지해서 외치고 있는 이 말이 언제쯤 국회에 닿을 수 있을지, 언제쯤 대통령이 하청노동자의 말을 들어주러 올지, 나는 그런 세상 반드시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지혜복 동지가 학교에 복직하는 걸 보고 죽고 싶고, 하청 노동자들이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보고 죽고 싶습니다. 나는 나와 같은 청년들이, 나보다 어린 청년들이 현장 실습이라는 이름 아래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런 세상 올 때까지, 그런 세상 좀 보고 죽고 싶고, 언젠가는 성노동자가 자신을 당당히 밝히고 나처럼 이야기하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내 친구들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를, 언젠가는 내 친구들이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살아갈 수 있기를, 언젠가는 다음의 변희수 하사들이 여군으로도, 남군으로도 복무할 수 있기를, 더 이상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지 않기를, 그래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죄스러워지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상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 세상을 여러분과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구호 외치겠습니다. 반도체특별법 전부 다 폐기하라! 차별금지법 즉각 제정하라! 노조법 당장 개정하라! 더 이상은 죽기 싫다, 우리를 살려내라! 투쟁!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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