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박준의 마음 쓰기] (23)
일러스트=유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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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보냈다는 편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 이사한 제 집 주소를 알 리 없었습니다. 퇴근 후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갔습니다. 공동 현관에서 우편함을 멀찌감치 들여다보는 일이 뭔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장 익숙했던 터전에서 그새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가까이 다가설 필요 없이 우편함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까지 이 집에 살던 사람입니다. 혹시 제 앞으로 온 편지가 있었나요. 주소 변경을 미리 못 해 번거로움을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혹시 보관하고 계신 우편물이 있다면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 주세요.’ 이렇게 적은 종이를 문 앞에 두고 올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발길을 돌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받지 못한 편지의 답장인 셈입니다. 보내준 편지를 영영 못 읽게 됐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꼭 다시 말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어떤 중요한 마음은 꼭 전하지 않아도 상대가 느낄 수 있는 거라고도 적었습니다.
며칠 후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언제 이사를 했냐고 축하한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쓸 것 하나 없다고, 바다로 여행 갔다가 기념 엽서 몇 장을 샀고 그 김에 오랜만에 편지를 적어 보냈을 뿐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편지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할 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적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으레 계절 인사로 글을 시작하고 상대의 근황과 안부를 물은 다음 본론을 적고 다시 몇 발짝 떨어져 새롭고 먼 시간을 기약하는 끝인사로 글을 맺는 오래된 편지의 작법이 이를 증명합니다. 전해야 할 내용만 단도직입적으로 적힌 것은 편지라 할 수 없습니다. 일찍이 우리는 그것을 통지서나 고지서라 불렀습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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