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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토)

[황유원의 어쩌다 마주친 문장] [23] 프리랜서를 위한 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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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으로 내가 먹을 빵 반죽되고, 창으로 내가 마실

이스마로스 포도주 채워져, 그 창에 기대어 나는 마시네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단편 2번

그리스 서정시 문헌을 뒤지다가 우연히 읽은 시 한 편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렵사리 한국어로 옮기면 대략 위와 같다. 시에서 알 수 있듯이 아르킬로코스는 시인이자 군인이었다. 그런데 짧은 시에 창을 세 번 등장시키며 인생을 요약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창으로 빵과 포도주, 즉 음식을 마련하는 삶. 그것까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포도주를 마실 때조차 창에 기대어 있는 마지막 모습은 어떤가? 고단한 밥벌이의 수단인 창은 잠시 한잔할 때도 내려놓을 수 없는 무엇이다. 여기서 창은 차라리 인생 그 자체 같다. 그 창에서는 인생이 흘린 피 냄새가 난다. 이 시야말로 모든 프리랜서, 즉 ‘자유 창기병’에게 바쳐진 영원한 송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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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시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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