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3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 손편지와 리본이 매달려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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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부산 여객기에서 불이 나 자칫 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던 지난 28일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부터 꼭 한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연이은 항공기 사고 소식에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다음날부터 유가족 심리상담 치료를 이어온 김경민 국립나주병원 호남권 트라우마센터장은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유족들이 점차 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진상규명 과정에 유족들이 참여할 길이 열리면, 각자 방식으로 상실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통합심리지원단 심리지원실과 바깥에 마련된 마음안심버스에선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4일까지 287명이 대면 상담을 받았다. 내담자의 70∼80%가 유족이었고 20∼30%는 경찰·소방 등 현장 대응 공무원과 자원봉사자였다. 김 센터장은 “참사 이틀째까지는 경황이 없어 찾아오는 분들이 많지 않았지만, 사흘째부터는 주검을 확인한 유족이나 신원 확인이 늦어져 불안해하는 유족 등 다양한 이유로 내담자가 점차 늘었다”고 말했다.
김경민 국립나주병원 호남권 트라우마센터장. kbc 동영상 갈무리 |
유족의 고통은 죄책감에서 비롯됐다. 김 센터장은 “상실 자체도 슬프지만 ‘나도 따라갔어야 했는데’, ‘왜 마지막에 그렇게 보냈을까’, ‘비행기 타기 전에 연락을 받았어야 했다’는 죄책감과 후회가 많았다”며 “많은 유족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잠을 못 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해 너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여객기 폭발로 신원 확인부터 난항을 겪으면서, 유족의 고통도 배가 됐다. 참사 11일 만에야 희생자 179명 모두 장례 절차까지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김 센터장은 “생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은 돌아가셨다는 걸 확실히 알았을 때보다 훨씬 크다”며 “사고 현장을 상상하면서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했다.
소중한 사람을 한날한시에 잃었지만, 유족들의 슬픔은 제각각이다.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지내는 유족이 있는가 하면, 눈물 한 방울 없이 덤덤한 얼굴을 한 이들도 있다. 모두 “정상적인 반응”이다. 김 센터장은 “나름의 방법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견디는 중”이라며 “이를 존중하지 않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 ‘슬퍼해도 괜찮으니 울어’ 하는 주변의 태도는 모두 상처가 된다”고 짚었다.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1층에 마련된 통합심리지원단 심리지원실. 사진 국립나주병원 호남권 트라우마센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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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의 충분한 애도에는 주변의 도움이 절실하다. 김 센터장은 “상실에 적응해 가는 시간이 애도”라며 “충분히 슬퍼하고 상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이에 통합심리지원단은 적어도 49재인 다음달 15일까지는 심리지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국가트라우마센터도 유족들이 원하면 거주지역에서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게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대상으로 추가 교육을 했다. 민간 전문가도 연결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슬픔과 애도를 거치는 데 유가족의 진상규명 참여를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김 센터장은 “유족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많이 느끼고 자책으로 이어진다”며 “가족이 돌아오지 못 해도 어떻게 떠나게 됐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박한신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족협의회 대표도 지난 14일 국회 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조사 중 유가족의 참여와 의견 개진할 기회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유족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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