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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6 (일)

[투데이 窓]군불군, 신불신(君不君, 臣不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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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1831년 프랑스의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에 한 일러스트가 실렸다. 화가 오노레 도미에가 그린 시사풍자화 '가르강튀아'가 그것이다. 이 한 장의 그림은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의 격노를 불렀다. 작품은 곧바로 정부에 압수당했고 도미에와 편집장은 각각 징역 6개월과 무거운 벌금형에 처해졌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이었길래.

거대한 배불뚝이 왕이 입을 벌리고 긴 혓바닥처럼, 컨베이어벨트처럼 생긴 판자를 통해 올라오는 재물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왕은 자리에 앉은 채 의자 바닥에 뚫린 구멍을 통해 임명장과 훈장을 배설하고 그 배설물을 차지하기 위해 귀족들과 부자들이 똥파리떼처럼 달려든다. 왕이 먹어치우는 재물은 서민들로부터 착취한 것이다. 1830년 7월 혁명 이후 권력을 장악한 루이 필리프는 민중의 열망을 배반하고 서민증세와 부자감세, 부정부패와 매관매직 등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 도미에가 그린 왕의 머리는 배를 닮았는데 프랑스어 'la poire'는 과일 배를 뜻하면서 속어로 멍청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풍자화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22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으로 출품한 고등학생의 작품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중 경고한 사건이 그것이다. 그림을 보면 영국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의 주인공 토마스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이 열차 전면부에 있고 기찻길 뒤로는 부서져가는 건물들이 보이고 앞에는 열차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가 기관실에서 열차를 조종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칼을 치켜든 검사들이 줄지어 올라탄 모습이다. 오른쪽 아래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느낌표 대신 그려진 신발 모양은 열차 좌석에 올린 구둣발을 암시했다. 풍자화의 요소를 풍부하게 갖춘 작품으로 심사결과 경기도지사상인 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문체부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대한 보조금을 절반으로 깎는 보복성 조치로 답했다.

조선 시절엔 어땠을까. 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1561년)에 따르면 '임금이 구중궁궐에 깊숙이 살아서 정치의 득실이나 풍속의 미악(美惡)을 듣지 못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비록 배우의 말이지만 어떤 것은 규풍(規風)의 뜻이 있어 채용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나례를 설치하는 까닭이다'라고 해 풍자예술의 순기능을 존중했다. 또한 유몽인의 '어우야담'(1620년)에 따르면 "예부터 우희(연극)에서 하는 말은 구경하고 웃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교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함이었다"며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했다.

그러나 폭군을 만나면 예술은 수난을 겪는다. 연산군 11년(1505년) 말 나례 공연을 보고 나서 왕이 전교하기를 "본디 나례는 배우의 장난으로 한 가지도 볼 만한 것이 없으며,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를 지어 모이면 표절하는 도둑이 되니 앞으로는 나례를 베풀지 말아 옛날 폐단을 고치게 하라"며 500년 동안 이어온 전통 송년공연인 나례를 금지했다. 공연 중 배우 공길의 대사를 듣고 격노한 연산군이 그 배우를 곤장을 친 뒤 먼 곳으로 유배 보내며 취한 보복성 조치였다.

예술가의 현실발언이 많은 시절이다. 당연하고 필요한 현상이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항상 어느 한 편을 들어야 한다. 중립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돕기 때문이다." 그날 연산군 앞에서 배우 공길이 한 대사는 다음과 같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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